정부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전면 시행에 맞춰 사업장 스스로 안전진단을 하도록 도운 정책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 이 정책으로 사업장이 안전 점검에 적극 나서고 정부가 이들 사업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우려는 상당수 사업장이 안전 수준을 과신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월 27일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에 맞춰 시작한 ‘산업안전 대진단’ 완료 건수는 25일 기준 21만건을 기록했다. 2월 넷째주만하더라도 1만1000여건이던 건수가 이달 셋째주 7만8000여건으로 늘 정도로 참여도가 높다. 이 속도로라면 내달까지 자가진단 45만건 완료, 30만개 사업장 지원이란 고용부의 목표 달성이 무난한 상황이다. 고용부는 벌써 약 9만3000여개 사업장의 지원사업 신청을 받았다.
1월 29일 시행된 산업안전 대진단은 사업장이 안전 사업장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10개 항목을 온·오프라인에서 스스로 간단하게 체크하는 방식이다. 결과는 3개 등급(빨강·노랑·초록)으로 2개 등급(빨강·노랑)을 받은 사업장은 정부로부터 안전 컨설팅, 기술지도 등 다양한 정부지원 사업 신청을 권고받는다.
우려는 정부지원 사업을 권고받지 않는 등급(초록)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이 비율은 진단 완료 건수의 42.9%에 달한다. 이 결과를 받은 사업장은 스스로 안전한 사업장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고용부 안팎에서 의외의 결과란 목소리가 나온다. 중대재해법은 전면 시행을 2년 더 유예하자고 할 정도로 현장의 우려가 컸다. 새로 이 법을 적용 받는 근로자 5인~49인 기업은 상대적으로 영세해 안전보건관리체계 준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작년 10월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참여 중소기업 74.6%는 법 시행 준비가 미흡하다고 답했다. 이런 우려의 배경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 빈도가 높다는 점이 있다. 매년 전체 사망산재의 70~8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앞으로 고용부는 산업안전 대진단을 참여도를 높이는 동시에 사업장 스스로 정확한 판단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진단 결과가 익명이고 정부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을 홍보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통상 민간 사업장은 정부 지원사업 불이익 등이 두려워 사업장의 역량을 외부에 높게 보이려는 경향이 있다. 대진단에 현장 근로자 참여도를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사측만 대진단을 전담하면 근로자가 판단한 안전수준과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 노동계도 현장 사고 위험을 가장 잘 아는 근로자가 사업장 안전관리체계에 참여할수록 사고 위험성이 낮아진다고 지속적으로 조언해왔다. 다만 대진단은 현재도 근로자가 참여할 수 있지만, 익명 진단인 탓에 고용부는 근로자의 참여 비율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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