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2월 미국 본토 미주리주의 한 훈련장에서 가상의 적국 지하땅굴에 투입해 수색·정찰하는 로봇 시연회를 실시했다. 이 로봇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스스로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아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연회 후에 미 육군은 “전투력발전사령부(DEVCOM) 산하 지상차량센터(GVSC)가 미주리주 소재 롤라훈련장에서 지하지형(SubT, 땅굴과 도시 지하시설)에서 사용할 ‘자율형 터널 탐사(ATE, Autonomous Tunnel Exploitation) 로봇의 기술 시연회를 가졌다”며 “ATE 로봇은 GPS 신호가 잡히지 않는 지하에서도 스스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땅굴을 탐색해 그 구조를 2D 또는 3D 지도로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심지어 미군 요원들이 무한궤도 또는 4족 보행 자율주행로봇을 앞세우고 지하갱도에 진입해 내부를 수색·정찰하는 사진들도 공개해 화제가 됐다. 가상 적국은 핵·생화학무기와 지휘시설 등을 지하갱도에 숨겨둔 북한을 상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알아서 장애물 회피·땅굴지도까지 생성
자율터널탐사(ATE·Autonomous Tunnel Exploitation)로봇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가 없는 자연 동굴이나 내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인공의 위험시설에서 초기 탐사·정찰 임무를 수행한다. 평시엔 재난 시에 붕괴된 건물 등에서 사람 탐사와 물체탐지의 역할을 수행한다.
주목할 점은 미 본토에서 진행된 시연회에서 자율터널탐사 로봇은 사실 한미 공동으로 개발된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로봇을 이용해 지형정보가 없는 지역 탐사 및 위험을 탐지하며, 탐사 지역의 3차원 지도를 생성할 수 있는 ‘자율터널탐사기술’ 확보 차원에서 미국과 손잡았다. 이날 성공적인 시연으로 2019년부터 개발해온 ATE 로봇이 사실상 개발 완성단계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ADD도 2022년 6월에 이 ATE기술을 확보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ADD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지상군 차량체계 연구소(GVSC, Ground Vehicle System Center)와의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자율터널탐사기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ADD는 2020년 8월 충남 태안군 소재 안흥종합시험장에서, 2021년 9월 26일 무인이동체산업엑스포에서, 2021년 10월 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등에서 이 ATE 로봇 시제를 소개하기도 했다.
ATE 로봇은 길이 1m, 폭 0.68m, 높이 0.75m의 소형 크기다. 무게는 140kg로, 최대 10km/h로 기동한다.
스스로 해당 지역을 주행 및 탐사하면서 다수의 로봇 정보를 융합해 3차원 지도를 생성한다. 사전에 알려준 관심 물체를 탐지 및 인지하며, 통신 가능 영역 확장을 위해 전략적인 위치에 통신 중계기로 자동 전개하는 기능도 갖췄다.
이를 위해 자연동굴 및 재난지역 등과 같은 다양한 환경에서 빠른 기동과 원활한 장애물 회피를 위해 상황·환경에 따라 트랙과 휠로 교체할 수 있는 구동 시스템이 적용됐다.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 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장치)인 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와 CMOS이미지센서와 같은 다양한 센서도 장착했다.
또 공간맵핑(SLAM)이나 지도작성 기술과 심층 강화학습 기반 자율 탐사 기술, 심층 신경망기반 인식기술, 공통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기술 등 다양한 첨단 기술들도 무장했다.
ADD 역시 ATE 로봇을 통해 수행한 시험에서 다양한 형태의 위험물체 인식과 오염지역 탐지, 수 cm급 해상도의 3차원 지도 생성에 성공해 ATE 로봇의 기술적 성능을 확인했다. 이 기술은 GPS 신호의 수신이 불가능한 동굴과 지하시설 등에서도 사전정보 없이 로봇의 자율주행 및 탐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존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AI기반 인식·판단·탐사 소프트웨어 탑재
ATE 로봇 개발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향후 미래 로봇기반의 연합작전 능력 배양을 위한 협력을 고려해 양국 로봇에 공통의 미들웨어(로봇 운영 처리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그리고 데이터 형식을 적용했다는 것이 가장 특징이다. 양국은 로봇 기술의 시너지를 위해 로봇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는 먼저 양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해 이를 융합한 것이다.
특히 ADD는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기능과 임무에 따라 형상을 바꿀 수 있는 모듈화된 로봇을 설계 및 제작했다. 이렇게 독자 개발한 최신 AI기술 기반의 인식과 판단, 탐사 소프트웨어를 ATE 로봇에 탑재했다. 여기에 조작 및 운용 측면에서는 휴대폰이나 태블릿에서 원격 조종이 가능하게 해 한명의 운용자가 여러 대의 로봇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미 군 당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적국의 핵이나 생화학, 방사능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는 로봇 도 공동 연구·개발하기 합의하고 제도적인 틀을 더욱 구체화 했다. 이에 대해 방산업계는 북한군 위협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한국의 재래식 무기체계 연구개발 수준이 국방선진국 대열에 올랐다고 보고, 미국 측이 공동 연구개발·수출 등 ‘윈-윈’까지 가능하다고 높게 평가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당장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한미 국방 당국 간 인공지능(AI)을 포함한 국방기술협력 강화 차원에서 정례적인 국방차관 협의체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방과학기술이 전쟁 승패를 좌우하고 국익 관철을 위한 힘이 되는 추세를 고려해 한미 국방부 차관이 정례적으로 만나 정책·전략·포괄적 차원에서 국방과학기술 협력을 논의하자는 취지다.
국방차관 협의체에서는 양국의 무기 공동 연구개발 방향 등 국방기술협력 의제를 설정하고, 민간 첨단기술을 무기 개발에 적용해 신속하게 전력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한다. 한미 국방부는 이를 위해 올해 관련 약정(Terms Of Reference)을 최근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北 핵·생화학 무기 신속 제거 로봇도 개발
특히 현재 논의되는 공동 연구개발 무기로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로봇을 비롯해 급조폭발물(IED) 제거 장비 등의 개발에 속도를 내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이 2500~5000t 규모의 화학무기를 저장하고 있고, 다양한 종류의 생물무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사시 아군 인명 피해 없이 이를 신속히 제거할 로봇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아울러 북한이 2015년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 묻은 목함지뢰와 같이 급조폭발물을 DMZ 아군 수색통로 등에 설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를 제거하는 장비가 우선 개발돼야 한다는 공감대도 일조했다. 미국 경우넨 IED 제거 장비를 공동 개발하면 최우선으로 중동지역 등 해외 작전지역에서 미군을 보호하는 데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WMD 제거 로봇과 IED 제거 장비는 합동참모본부와 주한미군이 그간 연합작전을 하는 과정에서 그 필요성을 도출해냈다. 오는 2027년께 한미 국방과학기술협력센터가 설립되면 양국 군의 소요 도출 과제가 더욱 확대되고 연구 개발도 활성화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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