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철새 도래지이자 버려진 고양이들이 모여 살아 ‘고양이 섬’으로 불리는 부산 을숙도. 이곳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는 안건을 놓고 문화재청과 동물보호단체가 공방을 벌인 끝에 결국 고양이 급식소가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고양이 급식소 16개를 설치하고, 먹이 부족 현상을 해결해 을숙도 내 철새를 보호한다는 동물단체의 요청이 기각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문화재청이 "조류/환경단체의 민원에 따른 것"이라며 급식소를 모두 철거하라는 공문을 각 지자체에 보내면서 이에 반발한 동물단체와 갈등이 불거졌다.
2일 문화재위원회 산하 천연기념물 분과는 최근 회의를 열어 을숙도 내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안건을 논의한 뒤 부결했다고 밝혔다.
논의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고양이 급식소 설치는 2016년 이미 부결돼 원래 상태로 회복하라고 요청했던 사안으로 철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국내외 자료를 볼 때 고양이로 인한 (철새 등의)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급식소 설치 문제는 긍정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을숙도는 낙동강 줄기와 바다가 어우러진 ‘생태의 보고’이자, 매년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찾는 국내 최대의 철새 도래지다. 천연기념물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로 지정된 을숙도에 버려지거나 자연 유입된 고양이들이 새를 잡거나 새알을 먹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급식소가 설치되면서 갈등이 커졌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은 2016년부터 관할 지자체와 함께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운영해왔으나, 문화재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문화재위원회는 급식소 설치를 불허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지난해 길고양이 급식소와 관련한 주민 민원이 제기되자 문화재청은 을숙도 내에 급식소 26곳이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운영돼 온 사실을 파악한 뒤 관련 기관에 철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부산시가 제작·지원한 급식소 15곳은 철거된 상태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등은 급식을 중단하면 오히려 길고양이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해 철새들의 생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급식소 16곳을 설치하게 해달라고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월 129개 단체, 1만 5100명의 공개의견이 첨부된 성명을 내고 "문화재청이 고양이와 철새의 공존을 막아선 안 된다"며 "문화재청은 명확한 피해 사실이 없는데도 다른 동물에 해를 끼친다는 낙인을 찍고 행정적 절차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비판한 바 있다. 이들은 급식소를 철거하면 오히려 먹잇감 사냥을 위해 철새가 서식하는 습지보호구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도 주장했다.
약 8년 만에 급식소 설치가 다시 부결된 가운데,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구역에 불법으로 설치된 시설물이라는 점을 들어 규정에 따라 철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기존에 설치된 급식소를 철거하고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라고 요청한 기한은 올해 1월 31일로, 이미 두 달이 지났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오늘 관할 지자체에 문화재위원회의 결정 내용을 알리는 공문을 발송했다. 자진 철거를 유도하면서 위원회 결정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