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개발 감시의 눈과 귀가 돼온 유엔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이달 말 활동을 종료한다. 패널은 15년간 북한의 핵실험, 불법 원유 수입 등의 동향을 상세히 지적하며 유엔 차원의 효과적인 대북 제재를 이끌어왔다.
그런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종료되면서 북한은 마음 놓고 핵무기 고도화에 나설 것으로 우려된다. 가뜩이나 미국이 ‘두 개의 전쟁’으로 북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표적인 국제 감시망까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 등 서방이 새로운 대북 감시체계를 만들 수 있겠지만 193개 회원국을 둔 유엔 차원에서 하는 활동에 비하면 중량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의 경제난으로 북한이 코너에 몰렸지만 러시아와의 협력에다 핵 개발 감시망까지 사라지면서 최대 황금기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물론 패널 활동 종료의 가장 큰 책임은 러시아에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에 긴장 구도를 만들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것도 모자라 연신 북한을 두둔하며 핵 위협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를 간과한 우리 정부도 책임론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러시아는 15년간 패널 연장에 찬성표를 던졌고 특히 신냉전 구도가 형성된 지난해 3월에도 찬성을 했다. 우리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적절하게 관리했다면 이번에도 러시아가 찬성표를 내 패널의 임기가 연장됐을 수 있다. 한미일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러시아와의 관계를 지나치게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나아가 러시아를 통한 북한 견제는 난망해 보인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이후 우리 정부는 러시아 선박과 기관·개인을 대상으로 독자 제재를 내렸다. 이에 러시아는 반발하며 맞대응을 예고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다행인 점은 5월 한국에서 한중일정상회의가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우려해 북러 간 밀월을 경계하고 역내 불안도 원치 않는 태도를 보이는 등 우리와 공통분모가 있다. 우리로서는 이런 중국을 활용해 북핵 위협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러시아와의 관계의 끈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머리 위에 짊어지고 있는 북한의 핵은 조용히 커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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