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봄’이 다시 찾아왔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31% 급증한 6조 6000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5일 공시했다. ‘반도체 한파’가 시작됐던 2022년 3분기 이후 최대이자 시장 전망치를 훌쩍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 성적표다. 매출은 71조 원으로 5분기 만에 70조 원대로 복귀했다. 특히 지난해 내내 적자였던 반도체 부문이 메모리 업황 개선, 인공지능(AI) 칩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흑자로 돌아서면서 ‘반도체 장기 호황’이 시작됐다는 기대감이 크다. 반도체 수출 증가 등으로 2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는 68억 6000만 달러로 1월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22년만 해도 1위였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매출은 지난해 인텔·엔비디아에 밀려 3위로 추락했다. 메모리 호황에 취해 자만한 데다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탓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대규모 투자와 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을 소홀히 한 탓이다. 이런 사이 미국 등 경쟁국들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수십조 원의 보조금을 뿌리는 등 범국가 차원에서 총력을 다해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대만 TSMC 공장 유치를 위해 50년 이상 묶였던 그린벨트까지 풀었다. 네덜란드는 자국 반도체 장비 제조 업체 ASML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베토벤 작전’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반도체 국가대항전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국은 시대착오적인 ‘대기업 특혜’ 프레임에 막혀 기업만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부 지원은 올해 말 일몰이 끝나는 투자세액공제(최대 15%)가 거의 전부다. 공장 건설은 지역 민원, 용수·전력 공급 차질 등에 막혀 늦어지기 일쑤다. 이래서야 ‘초격차 확대’로 선도자가 되기는커녕 후발 추격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민관정은 모처럼 찾아온 반도체 호황을 초격차 기술 확보를 통한 재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총력전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파격적인 세제 지원과 규제 혁파 등을 서두르는 한편 경쟁국처럼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 과감한 투자와 우수 인재 유치로 화답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4·10 총선 과정에서 약속한 반도체 지원책을 입법으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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