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중국을 겨냥한 다자간 안보 협력의 신개념이 제시됐다.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한미일 3국 협력 등의 확대·강화 방침을 천명하면서 “강력하고 강화된 상호 의존적 격자 구조(latticework)의 연합”을 강조한 것이다. 이로써 1990년대 컴퓨터 암호화 등 보안 관련 용어로 한정됐던 ‘격자’라는 말이 미국의 안보 개념을 설명하는 핵심 용어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이 제기한 ‘격자형 안보 구조’는 동맹·파트너 국가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소다자(小多者) 협력체를 통해 대(對)중국 견제와 압박을 위한 촘촘한 망을 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이에 따라 2023년 3월 미국·영국·호주 3국 정상이 만난 오커스 회의에서 호주에 원자력 잠수함을 조기 공급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2023년 8월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가진 한미일 정상의 만남에서는 3국 정상회담 정례화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확약했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8일 “중국의 강압에 일부 거점 동맹국 중심으로 맞서던 이전의 방식에서 탈피해 격자형(lattice-like)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그 일환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날 미국을 방문한 것도 격자형 안보 구조의 확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은 11일 일본·필리핀과 3국 정상회담을 통해 또 하나의 소다자 협의체를 도출할 예정이다. 지금 미국은 한국에 의존적 ‘보호(protection)의 동맹’에서 전략적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투사(projection)의 동맹’으로의 전환을 바라고 있다. 우리 역시 북러, 북중러의 급속한 밀착 등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에 직면했다. 지금은 한미일 공조 등 ‘격자형 안보 구조’에 적극 참여해야 할 때다. 우리의 주권과 평화를 튼튼히 지킬 수 있다면 쿼드와 오커스에의 동승(同乘)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