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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습→비명횡사→尹심판론…이재명, 총선 100일에 ‘정치 운명’ 걸었다

이재명, 한 달간 6908㎞ ‘尹 심판루트’ 마무리

피습 ‘동정론’ 묻히게 한 ‘비명횡사’ 공천 논란

‘셀프 악재’ 만든 양문석·김준혁 ‘무리수’ 공천

李 도운 ‘비명계 3인방’…재판 출석 공백 메워

조국 등장이 키운 ‘심판론’…“尹 책임 물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총선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진행된 선대위 차원의 마지막 유세인 '정권심판·국민승리 총력 유세'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운명’을 건 100일이 지나갔다. 피습으로 올해를 맞이한 이 대표는 이른바 ‘비명횡사’ 공천과 후보 막말 논란으로 위기에 직면했지만 선거 막판 ‘윤석열 정권 심판론’이 부각되면서 그야말로 구사일생한 모습이다. 이 대표가 4·10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맞이한 ‘결정적 장면’들은 때로는 그의 정치 생명을 조이기도, 숨통을 트여주기도 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당일인 10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 대표가 지난 한 달간 전국을 이동한 거리는 6908㎞(직선거리 기준)에 달한다. 이 대표는 자신의 동선을 ‘심판 루트’라고 불렀다. 투표를 통해 윤석열 정권에 ‘옐로카드’를 줘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그의 ‘심판 루트’는 사실상 올해 1월부터 시작됐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 연합뉴스


①부산 피습=이 대표는 올해 첫 행선지를 부산·울산·경남(PK)으로 정했다. 이번 총선 최대 승부처에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윤석열 정부 실정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결정은 그의 정치적 생명뿐만 아니라 운명까지 뒤바꿀 뻔 했다.

이 대표는 1월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서 지지자인 척 접근한 60대 남성으로부터 습격을 당했다. 이 대표는 흉기로 목 부위를 찔리면서 1.5㎝의 자상을 입었다. 생사를 오갈 뻔한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흉기가 급소는 피했다. 이 대표는 피습 8일 만에 퇴원하면서 “증오하고 죽이는 전쟁 같은 정치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공천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증오 정치를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탈당 선언 및 신당 창당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발언하고 있다. 권욱 기자


②‘비명횡사’ 공천=이 대표 퇴원 다음날인 1월11일, 그와 대선 경선 경쟁을 한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했다. ‘전쟁 같은 정치 종식’이 그의 탈당 이유였다. 이에 앞서 비주류 3인방인 이원욱·김종민·이원욱 의원이 당을 떠났다. 내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월 말 당 공천관리위원회와 전략공관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친문 좌장’ 홍영표 의원을 공천 배제(컷오프)시켰다. 홍 의원은 결국 탈당했다.

대표적인 비명계인 박광온·전해철·강병원·박용진·송갑석·윤영찬 의원 등에겐 경선에서 감점을 받는 ‘현역 하위 20%’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들의 빈자리는 막말 및 도덕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친명 원외’ 인사들이 메웠다. ‘비명횡사’ 공천은 결국 양문석 후보(경기 안산갑)의 편법 대출 의혹과 김준혁 후보(경기 수원정)의 막말 논란으로 번지며 총선 막판까지 이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사실상 이 대표 본인의 발목을 스스로 잡은 셈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4·10 총선을 사흘 앞둔 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③조국혁신당 등장=이 대표가 부각시키려고 애쓴 ‘정권 심판론’에 불을 붙인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3월 초 그가 창당한 조국혁신당은 야권 지지층 결집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비명횡사 공천으로 이 대표 체제에 실망한 이들까지 흡수하며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지지율까지 넘어섰다.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진보 진영의 파이를 키우면서 이 대표와 민주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조국혁신당은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이라는 ‘지민비조’ 슬로건으로 민주당과의 연대 관계를 강조했다. 이는 투표 참여를 주저했던 야권 성향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나오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국혁신당은 총선 이후에도 민주당과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조국혁신당이 불러일으킨 친문 진영 결집이 이 대표에게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2일 충북 충주시 무학시장을 방문해 김경욱 충주시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충주=오승현 기자


④비명계 백의종군=당대표 임기 내내 이 대표의 발목을 잡은 ‘사법 리스크’는 선거 운동기간에도 이 대표를 괴롭혔다. 이 대표의 재판 연기 요청을 재판부가 기각하면서 이 대표는 선거 유세와 재판 출석을 병행해야 했다.

이 대표의 빈자리는 공교롭게도 공천 과정에서 그와 각을 세운 비명계가 메웠다. 비명횡사 공천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은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누볐다. 임종석 전 실장은 총선 최대 승부처인 PK 지원에 집중했다. 공천 탈락한 박용진 의원은 강원과 서부경남, 대구·경북(TK) 등 험지 중심으로 지원 유세를 했다. 총선 과정에서 이들 비명계가 존재감을 보이면서 오는 8월 치러지는 전당대회의 당권 구도까지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7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앞에서 조재희 후보를 지원 유세 중인 이재명 대표를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⑤디올백·이종섭·대파 논란=이 대표가 위기일 때마다 그를 도운 것은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민주당 내홍이 극에 달했을 땐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논란이 불거졌고, 이 대표가 비명횡사 공천으로 비판에 직면하자 이번에는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하며 ‘런종섭 파문’을 일으켰다. 양문석·김준혁 논란을 가린 것은 875원 논란을 일으킨 ‘대파 한 단’이었다.

이 대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총선 슬로건을 ‘못살겠다, 심판하자’로 정하면서 정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악어의 눈물에 속지 않고 그들의 성과, 민생 실패에 대해서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 달라”며 여당 동정론을 차단했다. 공식 선거운동도 대통령실이 위치한 서울 용산에서 시작해 용산에서 마무리하는 ‘용두용미’ 일정으로 구성했다. 용산만큼 ‘정권 심판’을 상징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총선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진행된 선대위 차원의 마지막 유세인 '정권심판·국민승리 총력 유세'에 참석해 강태웅(용산) 후보를 비롯한 선대위원들과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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