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썼다. 특히 눈에 띄는 현상은 후보와 정당이 국회라는 입법기관을 오해하고 심지어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의원 선거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거라는 정당한 방법을 통해 유권자로부터 한시적으로 정치권력(입법권)을 위임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와 정당은 국회 내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려는 목적에 충실했던 것 같지 않다. 여당은 대통령실의 불통 때문에 선거운동을 원활히 진행하지 못했고 야당은 과반 의석 확보보다 당내 권력 강화에 신경을 쓴 듯한 공천의 후유증을 진정시키는 데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 입법부의 구성원을 뽑는 선거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현실, 구체적으로 현직 대통령의 심판과 차기 대통령 후보 하마평으로 점철된 현실은 우리가 왜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는지, 왜 국회를 운영하는지를 의심케 한다.
한국 정치권에 국회에 대한 오해와 혐오가 팽배하다는 사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각 정당의 공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정치 개혁과 관련된 공약을 보면 국회에 대한 우리나라 정당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국회의원 성과급제 도입, 위헌법률 발의자에게 법사위 및 법안소위 보임 금지, 국회의원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국회의원 수 감축 등을 내걸고 있다. 모두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입법부의 역할과 정치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선심성 공약에 불과하다.
하나씩 따져보자. 국회에 성과급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법안의 수를 세어 성과를 측정하려면 하나의 법안으로 올릴 수 있는 사안을 여러 개의 법안으로 쪼개 올리는 편법이 동원될 것이다. 위헌법률 발의자를 제재하겠다는 공약도 매우 위험하다. 입법 행위는 없던 법을 만드는 행위이고 기존의 법을 대체하는 법을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에 현행법 기준으로 보면 불법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특정 법이 위헌 판결을 받는 경우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그 법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지, 그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범법 행위를 했다는 말이 아니다. 기존 법과 헌법의 틀 안에서만 입법할 수 있다면 급속도로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도 모호하다. 국회의원의 노동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상대방 정당 소속 정치인을 만나 저녁을 같이하는 일은 노동인가, 아닌가.
국회 혐오의 정점은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행정부·사법부와 달리 모든 구성원의 생살여탈권을 유권자가 쥐고 있는 입법부의 규모를 줄이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는 다양한 의견과 입장이 자유롭게 논의되고 서로 다투는 입법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 국가와 구분된다. 국회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일부 유권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회의원을 배출하겠다는 정당까지도 국회를 혐오하는 현상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기괴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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