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임기가 한 달가량 남은 가운데 여야는 각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민생 법안 처리를 위한 구체적 일정을 잡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선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 재정비에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민생 법안들이 무더기 폐기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국회를 설득하는 한편 여야도 경제를 위해 시급한 법안들은 적극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경제신문이 12일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여야 대치로 논의가 멈춘 대표적 법안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 지역에 관한 특별법’이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탈원전 폐기’에 맞춰 원전을 계속 가동하려면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할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설치가 시급하다. 하지만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을 놓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법안이 계류 중이다. 방폐장 설치를 위한 논의가 지연돼 현재 폐기물은 발전소 내 임시 보관소에 저장돼 있지만 이들 보관소는 대부분 2030년대 초반 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자위 관계자는 “총선이 이제 막 끝난 상황이어서 아직 상임위 관련 일정 논의는 없다”며 “5월이나 돼야 양당 원내대표나 상임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나오지 않을까 추측만 한다”고 전했다.
상임위에서 여야가 함께 법안을 처리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 단계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법안들도 있다.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이에 해당한다. 국가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나 기관을 인수합병하는 경우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기술 유출자에 대한 벌금 상한을 15억 원에서 65억 원으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기술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상임위 심사는 무난히 넘겼는데도 일부 조문이 행정기관의 과잉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과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를 완화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지방세법 개정안, 노조 회계 공시 의무를 법조문에 명시하기 위해 발의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에 관한 법률 역시 여야 의견 차이로 국회에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나 지역 고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의 경우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6월 발의됐지만 2년 가까이 지나도록 상임위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수영 시사평론가는 “22대 국회도 여소야대여서 정부로서는 남은 국회 임기 동안 거야를 상대로 입법 활동을 벌여야 한다”며 “(정부는) 대통령의 국정 쇄신안이 나오면 국회와 협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