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시대지만 대중이 소장할 수 있는 작품은 회화 혹은 조각으로 제한된다. 규격화된 크기로 가격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하며, 집 혹은 회사에 설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더 이상 이런 작품을 생산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수많은 미술관과 비엔날레가 형태를 알 수 없는 ‘가변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고, 이런 분위기는 상업 전시 기관인 갤러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다만 가변하는 작품은 특성상 미술관이 영구히 소장할 수밖에 없다. 미술품을 하나의 문화재로 다루고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는 미술관은 이 가변하는 작품들을 어떻게 소장하고 있을까.
국내에서 미술관이 소장한 ‘가변하는 특성이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독특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변하는 소장품’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 전시는 크기와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가변하는 작품'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그 역할과 의미를 변주하는지 조명한다.
전시는 ‘가변하는 관계’, ‘가변하는 크기’, ‘가변하는 장소’ 3개의 주제로 국내외 작가 16명의 작품과 자료 20여 점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관의 상징인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현대미술 작품의 가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대중문화 기술의 상징인 TV를 탑처럼 쌓아 올린 이 작품은 결국 그 기술이 수명을 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존의 핵심이 됐다. 철 지난 모니터들이 모두 고장나고, 더 이상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 작품은 소멸하거나 혹은 파일로만 남겨질 수 있다. 그때는 미술관은 어떻게 이 작품을 후세대에게 보여줄까.
가변하는 작품의 핵심은 ‘매뉴얼’이다. 어떤 작품은 형태 없이 매뉴얼만 남겨지기도 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이 대표적이다. 코미디언은 ‘벽에 붙어 있는 바나나’로, 3일마다 바나나를 교체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격은 1억 원이 넘는다. 이 작품의 소장자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바나나’가 아닌 작가의 철학이 담긴 매뉴얼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유사한 맥락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관 바깥 복도에 설치된 ‘베네치아 랩소디’를 보자. 이 작품은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외관에 설치된 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됐다. 마카오 카지노의 밤거리를 연상케 하는 알록달록한 네온사인은 베니스 비엔날레로 대표되는 ‘문화 상업주의’를 꼬집는다. 작가의 이 같은 철학과 의도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방문한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였고, 당시 많은 해외 매체는 한국관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꼭 들러야 할 국가관’으로 꼽기도 했다.
미술관은 이 대형 설치물을 따로따로 떼어내 분리해서 보관한 후 전시할 때가 되면 장소에 맞춰 매뉴얼대로 설치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변하는 장소’라는 주제에 맞춰 작품의 높이를 다소 줄였다. 하지만 매뉴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오인환이 2001년 선보인 작품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서울에 산재한 게이바와 클럽의 이름을 향가루로 바닥에 쓰고 그것을 전시 기간 동안 태운다. 작품이 모두 타면 작품은 없어진다. 이 작업은 서울, 나고야, 코펜하겐, 베니스, 베를린, 뉴욕 등 각기 다른 도시에서 장소를 반영해 공연되고 있으며, 미술관은 ‘매뉴얼’을 통해 작품을 작가의 철학에 맞게 설치한다.
전시를 보고 나면 관람객의 손에는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미술관의 작품은 구매할 수 없고, 구매가 가능해도 가변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일반 대중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시는 어떻게 관람해야 하는가. 그저 경험하면 된다. 오인환 작품에서 나던 향 냄새를 맡고, 작품과 장소가 어우러지는 방법을 나름대로 해석하면 된다. 그게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이다. 전시는 7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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