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당이 됐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분단국가면서 통상 국가인 한국의 외교안보 통일 정책은 대내외의 관심 사항이다. 지난 2년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 핵심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 체제 구축이었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은 한미 동맹으로부터 출발한다. 윤석열 정부 2년의 한미 동맹 강화 노력에 박한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윤석열 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봉쇄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했다. 대만 문제나 남중국해 문제에 관여하기도 했다. 당장 중국 언론들이 총선 결과와 연결지어 윤석열 정부의 대미 일방 외교를 비판하는 것은 왜일까.
미국의 동북아 정책 핵심은 한일 관계를 통한 미일·한미 동맹의 연결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을 주문하는 미국의 요구를 화끈하게 수용했다. 야당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밀어붙였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과거사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갈등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혹자는 국내 정치 환경이 변하더라도 외교안보 정책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외교 정책이라도 국내 여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민의 안녕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더욱 국민적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통일 정책도 마찬가지다. 남북 관계 경색의 책임이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 행위와 핵무력 증강에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펼치면서 남북 관계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돌파구 마련도 쉽지 않다. 그러나 독일 통일의 사례를 보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독의 2국가론에 대응해 서독은 지속적으로 동독과의 대화와 교류를 시도했다. 데탕트라는 우호적 환경도 있었지만 1980년대 신냉전의 도래에도 서독은 일관된 대동독 정책을 펼쳤다. 미소 간 신냉전이 동서독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서독 정부는 끊임없이 미국과 소련을 오가면서 긴장 완화 정책을 펼쳤다. 미소 간 갈등의 인계 철선이 동서독 분단선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분단국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 따른 실용적인 외교였다.
우리 역시 분단국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따로 살려면 지금처럼 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끊임없이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조성해나가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중국과 뭘 해야 한다고 하면 불안해 하는데 경제통상에서는 중국에 소외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왜 정치 외교적으로는 그러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굴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외교는 철저한 국익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분단국으로서 남북 관계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국익은 미국·일본·중국과 일치할 수 없다. 우리는 탐탁지 않겠지만 일본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북일 관계에서 성과를 내려는 것도 철저히 정치적 이익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 하더라도 미국이 보는 한반도의 실익과 우리의 실익은 분명 다를 수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은 패권을 놓고 다투면서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하게 한반도 분단 상황을 활용한다. 북한이 말을 안 들으니 어쩔 수 없이 한쪽 편에 서겠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북한은 오히려 미중 갈등 상황을 이용해 핵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갑자기 미중 간에 변화가 생겨 북한에 핵 포기를 압박할 경우에 대비해 협상의 파이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만약 올해 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당선돼 국제 정세의 판을 다시 뒤집고 북한과도 직접 협상에 나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본이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중국이 대북 관계에서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아예 북한으로 돌아서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를 관리해 나갈 것인가. 해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북한 문제에 있어 동맹국인 미국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하고, 중국이 건설적인 자세로 전환할 수 있도록 분단국 외교의 새 틀을 다시 짜야 한다. 그렇게 하라는 것이 이번 총선의 결과임을 정부·여당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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