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으로 여자 농구팀의 감독을 맡았습니다.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일은 우선 우리 팀 선수들의 프로팀 진출을 돕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스포츠계에서 여성에 대한 유리 천장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박찬숙 서울 서대문구여자농구단 감독은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여자 스포츠 스타 중 은퇴 후 지도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만 구단에서는 이들에게 좀처럼 자리를 맡기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농구 여제’ ‘여자 농구 레전드’ ‘농구 코트의 여왕’ 등 다양한 수식어를 보유한 박 감독은 지난해 3월 서대문구여자농구단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서대문구여자농구단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한 실업 농구팀으로 평소 스포츠 활성화에 관심이 많은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2023년 3월 창단해 박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1980~1990년대 우리나라 여자 농구를 대표했던 박 감독 정도면 그동안 여러 팀의 감독을 해봤을 것 같지만 서대문구여자농구단이 첫 감독직이다. 1997년 여자 프로 농구가 출범했을 때 언론에서는 그를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 줄곧 하마평에 올렸지만 프로 구단들은 그를 외면했다.
박 감독은 “예전에도 감독에 도전해봤지만 장벽은 높았다”며 “프로 구단 감독을 뽑는다는 곳에 면접도 보곤 했는데 결국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를 택한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자는 왜 감독이 될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여성은 위기에 약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면서 “그래서 ‘여자에게 감독을 시켜봤냐’고 반문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박 감독은 2007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여자 농구계에서 여성들이 감독 선임 과정 중 성차별을 받고 있다며 진정서를 냈다. 당시 그가 진정서를 낸 것은 자신이 감독이 되지 못했다는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여성 스포츠계에도 스타들이 많은데 이들이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면 이는 결국 한국 여성 스포츠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후배들에게 지도자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박 감독은 “내가 제출한 진정서 덕분인지 인권위에서 스포츠 구단에 ‘팀 내 코치를 비롯한 지도자는 여성을 1명 이상 둘 것’을 권고했다”며 “이후 여자 농구단을 비롯한 스포츠팀에서는 여성 지도자를 최소 1명은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포츠계 여성 지도자 활성화에 힘썼던 그는 요즘 서대문구여자농구단 지도에 여념이 없다. 자신이 처음 감독을 맡은 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성 스포츠의 활성화가 서대문구에서 출발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선수들을 빨리 프로팀에 보내는 것이다. 박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프로팀으로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이들을 프로팀으로 가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면서 “개인 기량은 물론 팀플레이에서도 훌륭한 우리 선수들을 프로 구단도 눈여겨봐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 감독이 이끄는 서대문구여자농구단은 14일 ‘2024 전국실업농구연맹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창단 1년 만이다. 지금의 기세를 앞세워 박 감독의 팀은 7~8월 ‘제79회 전국남녀종별농구선수권대회’와 10월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등에 출전할 계획이다.
그는 “이번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매 대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우리를 응원해주는 서대문구 주민들과 여자 농구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