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 하락이 연일 이어지면서 엔·달러 환율이 154엔 중반까지 치솟았다. 당국이 연일 구두 개입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와 맞물려 달러 매수·엔 매도가 가속화하며 엔저를 부추기는 분위기다.
1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뉴욕 외환시장에서 15일(현지시간) 엔·달러 환율은 한때 154.45까지 올랐다. 이로써 달러 당 엔화 가치는 1990년 6월 이후 34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주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돌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가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퍼지면서 엔저 분위기는 심화했다. 여기에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돼 안전자산인 달러로 자금이 몰린 것도 추가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이날 오전 나온 3월 미국 소매 매출이 전월 대비 0.7% 상승, 개인 소비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이 나타나며 금리 인하 시점이 밀릴 것이라는 전망에 더 힘을 실었다. 티로우프라이스의 쿠엔틴 피츠시몬스 글로벌 채권 매니저는 “일본은행이 큰 폭의 금리 인상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엔화는 1980년대 이후 수준까지 10%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의 관심은 일본 통화 당국이 언제 환율 시장에 개입할지에 집중되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 엔·달러 환율이 151.95엔을 기록했을 때 세 차례에 걸쳐 9조 2000억 엔을 투입해 엔화를 사들이고 달러를 파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한 바 있다. 이미 ‘심리적 엔저 마지노선’인 152엔을 돌파한 상황이지만, 통화 당국은 연일 “주시하고 있다”, “만전의 대응을 하고 싶다” 등의 구두 개입에만 그치고 있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이 “단호한 조처를 취하고 싶다”는 강한 어조의 표현까지 써가며 시장을 견제했지만, 투자자들의 경계감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 개입이 18일 전까진 없을 것’이라는 시장 내 관측도 구두 개입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오는 17~18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린다. 달러 강세와 다른 통화 약세는 이번 회의의 중요한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각국이 협조해 대응을 검토하기 전 일본이 단독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어려울 거란 전망이 확산하면서 시장 경계감이 약화해 엔화 매도를 부르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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