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이른바 ‘3고(高)’ 파고 속에 미국 내 부유층의 생활비 역시 늘었지만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 규모가 물가 상승률을 앞지르며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7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포브스가 발표하는 ‘부유층의 생활비지수(CLEWI)’는 지난해 4.9% 올라 같은 기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3.4%)과 유로존 CPI 2.4%를 웃돌았다. CLEWI는 포브스가 오페라 티켓이나 명품 의류 및 잡화, 고급 자동차 등 미국 내 부유층이 소비할 만한 지출 항목들을 추적해 매년 산출하는 지수로, 2021년 10.1%, 2022년 7% 오르며 CPI 상승률을 앞질렀다. 지난해 상승률이 다소 둔화됐다고 해도 3년간 20% 이상 치솟은 만큼 부유층의 생활비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FT는 이 기간 미국 부자들의 자산이 외려 불어나 인플레이션에 따른 재산상 피해는 거의 없었을 것으로 진단했다. 이들은 주로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를 하는데 올 1분기 사모펀드들은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던 미국 기술주 붐에 올라타 큰 수익을 거뒀다. 부유층의 자산을 전담으로 관리하는 시티프라이빗뱅크의 글로벌 책임자 한스 호프먼은 “부유층이 이번 주식시장 랠리의 한 축을 담당했다”며 “부자들의 생활비가 올랐다지만 부자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많은 대형 패밀리 오피스는 주식·채권·사모펀드 등에 다양하게 투자하며 자산을 크게 불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포브스가 4월 발표한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전 세계 최고 부자들의 총자산은 2024년 14조 2000억 달러(약 1경 9674조 원)에 달해 전년도의 12조 2000억 달러 대비 14%나 늘어났다. 2023년 미국 400대 부자들의 평균 순자산 역시 전년 대비 13% 불어난 113억 달러(약 15조 6562억 원)로 집계돼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보다 증가율이 높았다. 도이체방크의 프라이빗뱅킹 책임자인 알렉산드로 카이로니는 “초고액 순자산가들은 투자 포트폴리오가 잘 분산돼 있어 인플레이션에 크게 노출되지 않는다”며 “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상장 및 비상장주식, 부동산 등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프라이빗의 글로벌 인사이트 책임자인 레베카 쿠크도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 부자들은 더 이상 인플레이션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며 “그들은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세계 경제 불확실성에 더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지속되는 만큼 투자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의 최대 자산운용사 LGIM의 다중자산운용 최고책임자인 존 로는 “인플레이션은 각 개인이 주식 투자를 실제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3~4% 오른다면 주식은 그보다 더 올라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실질 자본 가치 상승률이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UBS의 글로벌 자산관리 최고투자책임자인 마크 헤펠레 역시 “지역적으로 여러 자산군에 걸쳐 다각화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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