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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율 3%’ 말기 담도암 환자, 초정밀 방사선치료로 살렸다[메디컬인사이드]

■ 장지석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방사선치료 중 정상 장기 구획화·치료계획 단계에 AI 접목

방사선치료용 AI 소프트웨어 ‘온코스튜디오’ 개발과정 참여

원격 전이 일어난 말기암 환자도 생존율 향상·완치 희망 열려

이미지투데이




“담도암 진단도 당황스러운데 폐로 전이됐다니 눈앞이 캄캄했죠. 아들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와 가족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은인이셔요.”

서경제(65·가명)씨는 2019년 7월경 원인 모를 소화불량·황달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담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료진은 “담도암이 폐까지 전이돼 길어야 6개월 정도 남았다”며 사실상 시한부를 선고했지만 그는 5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도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존해 있다. 2022년 8월부터 캐나다 밴쿠버의 BC 암센터에 연수를 와 임상강사로 근무 중인 장지석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에게도 아들 졸업식 때 찍은 사진과 함께 안부를 전했다. 생존율이 3%에 불과해 최악의 암으로 불리는 말기암 환자가 이토록 장기간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 조기진단 어려운 담도암…원격 전이되면 ‘생존율 3%’ 불과


담도암은 지방의 소화를 돕는 담즙(쓸개즙)이 배출되는 통로(담도)에 발생하는 암이다. 일반적으로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흘러들어가기까지 경로인 담도뿐 아니라 담즙을 일차적으로 저장하는 장소인 담낭에 생긴 악성 종양을 통틀어 담도암이라고 부른다.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21년 한해 동안 담낭 및 기타 담도암으로 새롭게 진단된 환자는 7619명으로 전체 암 발생자(24만7952건)의 3.9%를 차지했다. 국내에서 9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지만 조기 발견이 어려워 예후가 나쁜 암으로 꼽힌다. 초기에는 황달 등의 증상이 전혀 없고, 진행되면 소화불량·복통·체중감소 등 특이하지 않은 증상이 동반되다 보니 건강검진을 통해 우연히 진단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견이 늦어지니 예후도 좋지 않다.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17~2021년 담낭 및 기타 담도암 환자가 일반인과 비교해 5년간 생존할 확률을 뜻하는 ‘5년 생존율’은 50.0%에 그쳤다. 그나마 5년 생존율이 절반 정도인 것도 암이 처음 발생한 장기를 벗어나지 않은 국한 단계일 때에 한한다. 주위 장기나 인접한 조직 혹은 림프절을 침범한 국소 진행단계인 경우 5년 생존율이 34.2%, 멀리 떨어진 다른 부위로 전이된 원격 전이 단계에서는 3.2%까지 떨어진다.

◇ 방사선치료 정밀도 향상…수술 못하는 말기암 환자에 새로운 치료 대안으로


현재 담도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수술이다. 하지만 전체 환자 중 근치적 절제(종양과 함께 발생 구획 전체를 절제)가 가능한 경우는 약 40~50%에 불과하며, 서씨처럼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들은 증상 완화를 위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는다. 서씨가 장 교수를 처음 만난 계기도 시한부 판정 후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연세암병원을 찾으면서다. 두 사람의 만남이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항암치료와 함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방사선치료를 받는 나날이 6~7주간 이어지는데, 애써 치료를 받는 보람도 없이 암세포는 온 몸 구석구석으로 번졌다. 서씨에게는 계획된 치료를 마치고 시행한 영상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 가장 고역이었다고 한다.

“요즘 방사선치료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르시죠? 일부 암에서는 수술 못지 않게 치료 성적이 좋아졌다니까요. 아드님 졸업사진 같이 찍으셔야죠.”

자식이 둘이나 되는데 학교 졸업은 시켜야 편히 눈을 감지 않겠느냐던 서씨의 넋두리를 기억했던 걸까. 장 교수는 ‘전이 병변이 커졌다’거나 ‘새로운 전이가 생겨났다’는 소식을 전할 때마다 의학지식에 문외한인 서씨에게 방사선치료 분야의 획기적인 연구 성과도 소개해 주곤 했다.



◇ AI 알고리즘 접목하니…“3D 장기 컨투어링 작업 시간 90% 단축”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검사로 얻은 영상으로 장기의 윤곽을 본따 방사선치료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 인공지능(AI) 같은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면서 더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4기 암이라도 전이암이 소수로 국한되어 있는 일명 ‘희소 전이(oligometastasis)’의 경우 고선량의 방사선을 1~5회에 걸쳐 매우 정밀하게 조사하는 ‘체부 정위 방사선치료(SBRT·Stereotactic Body Radiation Therapy)’로 장기 생존은 물론 완치도 가능한 날이 머지 않았다는 희망 섞인 이야기도 건넸다. 장 교수를 믿고 꾸준히 방사선치료를 받았던 서씨는 2년이 채 되지 않아 ‘전이 병변이 모두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로부터 3년을 넘긴 지금까지 새로운 전이가 나타나지 않은 채 같은 약으로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장지석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가 AI 기반 컨투어링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방사선치료를 앞둔 암환자의 정상 장기에 대한 영상구획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연세암병원


장 교수는 해외 연수를 오기 직전까지 온코스튜디오의 방사선치료용 AI 기반 컨투어링(구획화) 소프트웨어 ‘온코스튜디오’의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고선량의 방사선을 조사해 암세포를 죽이는 방사선치료는 주변 정상조직을 보호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정밀한 방사선치료 계획을 세우려면 CT·MRI와 같은 영상자료에 정상 장기를 컨투어링하고 암조직과 장기별 조사되는 방사선량을 예측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온코스튜디오는 의료진에 의해 일일이 수동으로 이뤄지던 이러한 과정을 AI로 자동화했다. 온코스튜디오의 AI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3차원(3D) 영상에서 정상 장기를 컨투어링(구획)하는 데 걸리는 작업 시간이 90% 가량 감축된다. 짧으면 3~4시간, 길면 1~2일까지 걸리던 작업 시간을 수분 이내로 줄이는 것은 물론 정확도도 높아질 수 있다. 방사선치료의 여러 단계에서 AI 기술 적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이러한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온코스튜디오는 2022년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2등급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고 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방사선종양학과 50여 곳에서 사용 중이다. 장 교수가 현재 근무 중인 캐나다의 병원을 비롯해 해외 여러 기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지석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사진 제공=연세암병원


장 교수는 “BC 암센터는 AI 컨투어링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 여러 제품을 테스트중”이라며 “현지 의료진들에게 온코스튜디오를 시연해 보이니 다른 제품보다 빠르고 정확도가 높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8월 연세암병원으로 복귀를 앞두고 온코스튜디오, 현지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해 전이된 암의 위치를 자동으로 찾아내고 병의 속도를 계산함으로써 체부정위방사선치료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치료시기와 적응증을 규명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그는 “AI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병원 간 편차를 줄이고 치료의 효율이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난치 암 정복은 물론 암환자와 의사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전반적인 치료의 질이 향상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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