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과 유가의 최대 변수로 이란과 이스라엘 충돌을 꼽으며 더 확전하지 않을 경우 시장 상황은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에 대해서는 “근시안적 시각”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춘계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 총재는 19일(현지시간) 특파원 간담회에서 “여러 불확실성이 한꺼번에 터진 상황”이라며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과 미국 금리 인하가 생각보다 지연된다는 자료가 나오기 시작하며 우리뿐 아니라 아시아 환율이 동반 약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화 절하 속도가 과도하게 빠르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에서 이런 의견을 공유해 환율이 안정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며 “이후 이스라엘이 이란에 반격하며 흔들렸는데, 확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며 다시 안정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우리처럼 석유소비량이 많은 나라는 중동 사태가 어떻게 될 지에 따라 향방이 굉장히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다행스럽게 확전이 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라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확전이 더 되지 않는다면 환율 관리 차원에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확전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유가가 크게 더 올라가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제 생각엔 환율도 다시 안정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추경 편성 요구와 관련해서는 국가 재정 상황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53% 수준이라고 언급하며 “다른 나라보다 훨씬 재정 여력이 있으니 경제가 어려우면 이 재정을 활용하자는 견해엔 2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국가부채 비율이) 53%이지만, 우리가 현재의 복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고령화로 인해 정부가 지출해야 되는 국가부채를 생각해 보면 20년 내에 이 숫자가 70%, 90%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숫자만 보고 재정의 건전 상태를 파악해서 ‘여유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정을 쓰더라도 일반적으로 쓰기보단 정말 아껴서 타깃으로 해, 진짜 어려운 계층에다 쓰는 그런 우선순위를 잘 가려 써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또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는 돈을 나눠준다고 해결될 문제라든지, 아니면 이자율을 낮춰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저출산 등 많은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어렵겠지만 사회적으로 구조조정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다 정부가 해결해야 된다’, ‘재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임시적으로 아픈 곳에 붕대를 잠깐 바꾸는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총재는 미국보다 한국이 먼저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에 대해 “금통위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라며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평균 2.3%까지 내려가느냐에 확신을 못 하는 상황인데, 이를 우선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미국이 제기하는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에 대해 “국내 수요에 비하면 과잉이지만 수출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게 왜 과잉이냐 할 수도 있다”며 “중국의 저가 제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는 경제뿐 아니라 협상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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