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분을 일정 범위 안에서 대학별 자율 조정에 맡기는 등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의료계는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성균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과학적인 근거 없이 산정된 의대증원 정책을 리콜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성균관의대 기초의학교실과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 교수들로 구성된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정치적으로 결정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의료 정책은 '의료농단', '의대 입시농단'이라 불려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이들은 지난 19일 정부가 대학이 희망하는 경우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분의 50~100% 범위 안에서 자율 모집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을 두고 "2000명 의대 증원이 정부와 대학 총장의 임기응변으로 급조된 비과학적·비합리적 정책이었음을 스스로 고백한 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근 빚어진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 사태는 의사 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필수 진료과와 지역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는 지적이다.
비대위는 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2018년 폐교됐던 서남의대 사태를 거론하며 "준비되지 않은 의대 정원 확대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실한 의대교육으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이 떠안을 수 밖에 없으며,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면 관련 예산과 교육시설, 기초의학 교수진을 확보한 다음 세심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지역 및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와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주 80시간에 달하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을 꼽았다. 비대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 상담 횟수는 14.7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반면 보건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8.4%로 OECD 평균(9.7%)보다 낮다. 의료이용이 많고 보건재정 지출이 적은 구조에서 수련생이라는 명목으로 전공의 인력을 값싸게 채용해 버텨온 만큼, 이미 배출된 전문의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비대위는 “아직 늦지 않았다"며 정부를 향해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즉시 중지하고 의정협의체를 구성해 의사 수급 추계를 통한 정원 규모를 논의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일체의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오직 국민을 바라보며 의대 정원, 지역·필수의료 정책 수립과 의료개혁에 대한 진정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의 현명한 대승적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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