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연례보고서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문구를 잇따라 삭제 또는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수십 개 기업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지난해 연례보고서(K-10)를 분석한 결과 DEI와 관련한 내용이 지워지거나 축소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미 유명 백화점 체인 ‘콜스’는 2020~2022년 연례보고서에서 ‘다양한 리더’(diverse leaders)를 양성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지난해 보고서에서는 ‘다양한’이라는 문구를 지웠다.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도 2022년 연례보고서에서 직원의 50%를 소외 계층 출신으로 채용하고 40%를 여성 혹은 ‘논 바이너리’(스스로를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규정하는 사람)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했지만 최근 보고서에서는 관련 수치를 뺐다. 2020년 연례보고서에서 직원 가운데 30%를 흑인과 라틴계로 채우고 이들 인종의 리더 수를 2배 늘리겠다고 적었던 워크데이도 지난해 보고서에서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이 같은 현상은 미 연방대법원이 대학교 입학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하는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판결 이후 공화당 소속 일부 법무장관은 미 포천지 선정 100대 기업에 서한을 보내 채용 및 승진 과정에서 인종에 따른 특혜를 부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 보수 진영의 일부는 이전부터 DEI가 능력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이어왔다. 또 관련 규정은 역차별을 초래한다는 반발도 컸다.
WSJ는 어퍼머티브 액션에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소수자 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을 겨냥한 법적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이어 “DEI 프로그램이 법적, 정치적 위협을 받고 있다”며 기업이 다양성 확보와 관련해 균형 잡힌 정책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펀드평가회사 모닝스타 소속 애널리스트 린제이 스튜어트는 “최근 기업이 감수해야 하는 정치적 위험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