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봐요. ‘아침 그리고 저녁’을 쓸 때도 이 소설을 읽게 되면 독자들이 죽음이 더 무서워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샤이닝’을 읽으셔도 죽음이라는 게 더 두려워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의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소설가 욘 포세(65)는 23일 한국 독자들과 온라인으로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문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와 노르웨이를 오가며 지낸다는 그는 이날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 주한노르웨이대사관이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대산홀에서 개최한 낭독회 ‘2024 낭독공감-욘 포세를 읽다’에서 화상 연결로 독자들을 만났다.
그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좌중을 이끌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들려줬다. 포세는 “제 작품들이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닌 것 같지만 위안을 받으신다니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포세의 작품들에서는 희곡과 소설을 가리지 않고 유독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가 도드라진다. 최근 국내에 번역돼 나온 소설 ‘샤이닝’ 역시 그렇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발표된 최신작인 이 작품에서 작가는 막다른 길에서 헤매다 신비의 존재들과 마주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를 섬세하게 더듬는다. 이날 사회를 본 정여울 작가는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는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문장에 마침표를 쓰지 않고 쉼표만 사용한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과 흔히 ‘3부작’으로 불리는 연작소설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질 무렵’도 마찬가지다. 산 자들이 죽은 자들과 만나거나 서로 대화하는 것은 포세의 작품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설정이다.
포세는 시에서 시작해 23세에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뒤 생계를 위해 극작에도 나서면서 시·소설·희곡 세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해왔다. 그는 “시와 소설에서 써 온 침묵이라는 장치를 희곡에서 더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흥미를 느꼈다. 희곡을 처음 쓸 때는 그전에 시와 소설 작업에서 배운 것을 적용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을 다 합쳐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세의 문학 세계 특징 중에는 고요하게 가라앉은 침묵의 분위기와 문장의 반복에서 비롯되는 특유의 음악적인 리듬감이 있다. 바닷가에서 자라 파도의 리듬감이 몸에 밴 그에게 글은 곧 음악이고, 음악은 곧 글이다. 그는 “글을 쓸 때는 음악을 잘 못 듣는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음악이기 때문이다. 듣는 음악은 제가 쓰는 음악(글)과 서로 갈등하고 충돌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책의 날’을 맞아 한국 독자들에게 독서의 힘과 매력을 말해 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이렇게 덧붙였다.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삶을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고, 또 조금은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인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여행으로 이런 경험을 얻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 삶을 좀 더 강력한 방식으로 느끼게 될 거예요.”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