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참패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쇄신 방안을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 험지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였던 후보들은 용산 대통령실과 ‘친윤(친윤석열계)’ 영남 지도부의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연일 강도 높은 쇄신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다음 달 원내대표 경선과 6~7월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나·이(나경원·이철규) 연대’로 불리는 범친윤 지도부 출범 가능성이 다시 떠오르면서 당 안팎의 혁신 목소리가 무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25일 총선 참패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개최한 토론회에서 수도권 당선인과 낙선인들은 견고한 국정 심판론과 지도부의 선거 전략 부재를 참패 원인으로 꼽았다. 김재섭(서울 도봉갑) 당선인은 “강북 험지에서 어떻게 당선됐냐고 묻는데, 솔직히 우리 당이 하는 것과 반대로 했다”며“‘이·조(이재명·조국) 심판’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고 당에서 내려온 현수막은 4년간 한 번도 걸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중심으로 당이 개편되고 수도권에서 낙선한 분들의 목소리가 절대적으로 많이 반영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기 고양병에서 낙선한 김종혁 조직부총장은 “선거운동을 다니다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보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더 싫다는 정서가 굉장히 많았다”며 “당이 ‘영남 자민련’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윤재옥 당 대표 권행대행 겸 원내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를 비롯해 현역 의원과 당선인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당내 수도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총선 패배를 계기로 고강도 쇄신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지만 새롭게 꾸려진 지도부는 ‘도로 친윤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소문만 무성했던 ‘나·이 연대설’은 당내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점차 구체화하는 모양새다. 특히 당사자들은 모호한 입장으로 뒷말을 남기고 있다. 나경원 당선인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이) 연대라는 표현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철규 의원도 그렇고 연판장을 돌린 의원도 전화 주셔서 밥을 먹기도 했다”며 친윤 인사들과의 관계 회복을 시사했다. 지난해 나 당선인의 전당대회 출마를 좌절시킨 ‘연판장 초선 의원’ 중 22명이 재선에 성공했다. 차기 당 대표를 뽑는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이들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만큼 나 당선인의 행보가 ‘친윤 품기’로 읽히는 대목이다. 한 친윤계 의원은 “친윤 그룹의 비토로 당 대표가 되지 못한 나 당선인은 장제원 의원이 떠난 뒤 친윤 그룹의 리더를 맡고 있는 이 의원을 통해 이들과의 관계를 다지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의원도 나 당선인과의 연대설에 대해 선을 긋고 있지만 직간접적으로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이 의원이 각종 모임을 통해 22대 총선 당선인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는 것과 달리 또 다른 원내대표 후보들은 여전히 출마 여부를 고심 중인 상태다. 이 의원이 최근 당선인들과의 조찬 모임에서 희망하는 상임위원회를 물어본 것으로 알려지면서 원내대표 출마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사태를 관망하던 중진 사이에서도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소위 ‘윤핵관’이라 불리는 이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는 게 맞느냐”며 “‘도로 친윤당’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친윤 의원들도 이 의원을 뽑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4선 도전에 실패한 조해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정권 심판을 초래한 대통령의 심복이 반성과 자숙은커녕 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대통령의 인식이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신호를 국민에게 보내주고 있다”며 이 의원을 직격했다.
한편 윤 권한대행은 29일 3차 당선자 총회를 열고 전당대회 준비를 위한 ‘관리형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 비대위원장 후보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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