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많은 걸 가져가도 반드시 색종이 한 장쯤은 남겨준다는 것을 우리 코딱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 시절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74·사진)씨가 최근 에세이 ‘코딱지 대장 김영만’을 펴냈다.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 전국 각지를 다니며 왕성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가지 코딱지들의 오해가 아쉬워 책을 쓰게 됐다. “저 아저씨는 그 시절에 서울 예고도 나오고 색종이 접기를 하니까 금수저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애초에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위기 속 발견한 색종이 한 장에 매달린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예고에 입학을 한 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온 가족이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판자촌에서 생활하며 수업료를 내지 못해 노심초사했다. 더 큰 시련은 삼십대에 찾아왔다. 대우(옛 대한전선)의 광고실에서 일하던 그는 돌연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도피의 일환으로 찾은 곳이 일본에 있는 친구 집이었다. 그냥 있기가 눈치가 보여 하루는 친구 아이의 하원을 도와주러 유치원에 갔는데 아이들이 색종이를 접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종이를 쥐고 고사리손으로 만들어내는 학, 거북이 같은 것들에 마음을 뺏겼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색종이 자체는 찾아보기 힘들고 누런 신문지를 잘라놓은 정도였어요. 종이 접기도 동서남북, 딱지, 치마저고리 등 어른들에게서 구전돼 온 것들이 전부였고요.”
그렇게 색종이가 서른 둘 그의 인생에 나타났다. 그는 “처음에는 기회라고 생각을 못 했다”며 “다만 ‘이게 나하고는 어떻게 연관이 있을까’ ‘내가 하면 어떤 방식이 될까’로 접근했다”고 전했다. 일본어도 모르는 상태로 일본 서점에서 산 종이접기 책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내 최금희씨는 딱 일 년만 해보라고 용기를 줬다. 매일 방에 틀어박혀서 16시간씩 종이접기를 해서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6개월 꼬박 커리큘럼을 개발했지만 강의할 곳이 없었다. ‘무료로 강의해드릴게요’ 수십여통의 거절 끝에 단 한 곳이 응답했다. 나중에 전국의 유치원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까지 강의는 커졌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KBS ‘TV유치원’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일주일에 하루 녹화에 다섯 개의 종이접기를 해야 했다.
김 저자는 “그때 스스로 원칙을 세운 게 ‘똑같은 건 절대 하지 말자’였다”며 “어린이 친구들이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일년 전에 방송했더라도 똑같은 게 나와서는 안 됐다”고 말했다. 어떤 날은 5개 중에 4개까지는 생각이 났지만 마지막 한 개가 생각나지 않아 녹화 불빛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씨름을 하기도 했다. 2년이 지나자 우울증까지 왔다. 결국 시간과 노력이 치유 역할을 했다. 그는 “무사히 3년을 버티자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며 “주제를 미리 받고 특별한 준비 없이 방송국 가서 세트 앞에 앉으면 종이접기가 뚝딱 되는 경험까지 했다”고 말했다. ‘OO 접기 가능할까요?’ 지금도 각 기관에서 의뢰가 오면 그의 대답은 한결 같다. “네. 걱정마세요.” 코딱지들에게도 말한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고통은 심하지만 그 고통을 겪은 것의 몇 배의 희열을 줍니다. 걱정말고 버텨보세요.”
그의 최대 공헌은 2차원 일색의 어린이 미술을 3차원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지금도 종이조형 전문가라고 불리는 게 제일 좋다. 정상의 자리에 섰지만 더 이상 올라가는 대신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목표다. “정상에 있는 사람이 노력하면 더 올라갈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정상에 올라가 본 사람은 알아요. 그 자리에서 안주하는 것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놓는 순간 도태됩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인스타그램으로 코딱지들과 소통도 하고 당근 거래도 한다. 쿠팡 로켓 배송도 잘 쓴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별나다고 눈을 흘기다가도 어느 순간 수줍어하면서 부탁한다. ‘나도 쿠팡하는 법 좀 알려줄래’ 그럼 앱도 깔아주고 회원가입까지 시켜준다.
그는 항상 당부한다. 어른들이 대접 받고 싶으면 요새 친구들 먼저 이해하고 살갑게 대해줘야 한다는 것. ‘코딱지라고 불러주세요’ ‘한번만 안아주세요’ 하며 다가오는 친구들을 보면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충분히 다 해준다. 그는 “연예인이나 국회의원을 만나도 나한테 하는 것처럼 알콩살콩 대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한 명쯤 이런 어른도 있어 위안이 된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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