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동이 26일 급물살을 탄 데는 어렵게 만들어진 협치의 골든타임을 사수해야 한다는 양쪽 모두의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달 19일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통화로 이번 주 만나기로 합의했지만 의제 선정을 둘러싸고 1주일째 공방만 주고받으면서 “오히려 정국이 더 꼬여간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특히 민주당이 5월 임시국회 강행을 통해 ‘채상병특검법’ 등 정쟁을 야기할 만한 법안 처리를 벼르고 있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의 만남으로 여야 간 갈등 봉합과 양극화로 치닫는 정치 복원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천준호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3차 실무 협의를 갖고 2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1시간~1시간 30분가량 차담 형식으로 진행될 회동에서 두 사람은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민생·국정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참모진들에게 “준비를 잘해 (이 대표를) 잘 모시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회담 배석 인원은 양측 각 3명으로 결정됐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 홍 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민주당에서는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대변인, 천 실장이 자리한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단독 회담은 사전에 조율되지는 않았지만 즉석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홍 수석은 독대 가능성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다가 자연스럽게 시간이 필요하면 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찬이 아닌 차담의 형식이 아쉽다’는 지적에 대해 홍 수석은 “날짜를 마냥 늦출 수가 없어서 가장 빠른 날로, 그리고 ‘오찬 여부가 중요치 않다’는 두 분의 뜻을 감안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의제를 제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논의한다’는 방침이지만 회담 결과물을 두고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통령실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민생과 경제를 살리고 여러 국정 현안을 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홍 수석은 ‘국무총리 인선 협조가 논의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민생 현안, 국민적 관심 사항들에 대한 모멘텀을 찾으시려 한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총선에 나타난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국정 기조 전환을 도모하겠다”며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천 실장은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채상병특검법 등 준비한 의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리겠다며 “(성과를 내자는 데 대통령실도) 당연히 동의했기 때문에 회담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다루냐’는 질문에는 “실무 협상 과정에서는 언급했다”며 “어떤 의제는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한 바는 없다”고 여지를 뒀다.
이번 회담이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협치의 전환점이 될지는 두 사람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는 평가나 나온다. 대선을 치르며 감정의 골이 깊어졌지만 의정 갈등, 물가 등 현안에서 한두 가지의 합의 사항이라도 도출된다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을 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모두 정치적 유불리 측면에서도 나쁠 게 없다. 지난 2년간 새 정부의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조직법(개정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차기 국회마저 범야권이 192석을 가져가면서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협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국정 파트너’로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각종 민생 성과를 창출하며 ‘사법 리스크’를 돌파해나갈 필요가 있다.
29일 회담은 의제 선정 등을 둘러싸고 양측이 기 싸움에 몰두하며 ‘무산 관측’도 나오는 와중에 전격 확정됐다. 협의가 난항을 거듭하던 이날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급선회하고 대통령실이 이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급진전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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