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범죄자에 대한 '사적 제재'가 위험한 이유 [김정인의 MZ의 참견]

■김정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백지법 대신 제가 신상을 공개해드립니다"

각종 SNS에서는 이런 제목을 가진 게시글과 영상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썸네일에는 제작자가 공개하고자 하는 사람의 얼굴과 혐의를 크게 적어놓고, 정의구현을 시사할법한 제목으로 시청자를 유입한다. ‘참교육’, ‘법원 대신 처형’, ‘피해자의 울분을 풀어주기 위한 방송’ 등과 같은 문구로 가득한 영상에서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이나 스토킹 등 법률의 특이사항으로 인해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내용이 담겨있다.

신상공개 혹은 역으로 피해자의 입장을 느끼게 해주는 연출 카메라 형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뢰인을 위해 복수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로 위의 무법자, 학교폭력, 불륜 등 도덕적 해이와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는 여러 항목이 이 영상의 소재에 해당된다. 신상공개를 위해 만든 한 인스타그램 계정은 1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갖고 있고, 이는 사적제재 콘텐츠에 대해 사람들의 수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왜 사법기관이 존재하는데도 개인에 의한 구형이 이렇게나 수요가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콘텐츠들이 법정의 솜방망이 처벌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설욕을 씻어주는 ‘정의구현’을 표방하고, 법 앞에서 피해자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을 극복하는 '통쾌함'을 느끼는 심리를 작용케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적 제재를 정의구현의 한 방법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적제재는 엄연히 불법이다. 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군다나 명예훼손에 비해 사적제재는 ‘비방할 목적’ 요건까지 더해져 가중처벌 대상이 된다.

사적제재는 다음과 같은 위험성이 있다. 첫째,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피의자의 처벌을 약화시킬 수 있다. 사적제재를 행하는 일반적인 이유는 범죄자가 치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죗값을 되묻는 의도로 진행되는데, 이와 같은 행위가 반복돼 일상화되면 객관적 판단기준인 법 체제가 유명무실화되고 이에 동반해 법적 강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피해자의 권익이 더 침해될 수밖에 없다.

둘째, 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왜곡된 처벌을 내릴 위험성이 있다. 객관적인 판단 기준과 이성적인 판단이 부재한 사회가 도래한다면, 얼굴을 모르는 인터넷 판사가 무분별하게 신상을 공개하거나 곳곳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등 사회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사적제재가 불법이며 잠재된 위험성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사법체제를 신뢰하기만 한다면, 기존 문제를 똑같이 양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정하고 정당한 기준을 만들어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고 합당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적제재의 가장 큰 원인은 “사법체제의 불신”이다. 사회에서 개인을 보호하는 울타리인 법의 허술함 또는 부재가 사적제재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법의 허술함 그리고 부재’를 어떻게 보완할지 모색해봐야 한다. 이런 고민을 통해 법 집행의 신뢰성을 보장하고 법적 절차의 공정성을 보완해 탄탄한 사법체제를 구성할 수 있다.

최근 AI, 딥페이크 등 기술을 둘러싼 법률상의 문제가 생겨나고 있듯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환경에서 법의 빈칸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특히 유럽연합(EU)의 AI규제법안이나 미국의 변호사를 위한 AI 예비 지침이 나오는 반면 대한민국 국회는 이와 관련해 잠잠하다는 점이 이 점을 뒷받침한다.

기술뿐 아니라 사회에선 다양한 가치가 병립하는 장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동향파악이 더욱 빨리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보를 신속하게 교류하고 학술적 논의가 유의미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법률 데이터를 개방해 개발자, 연구자 등이 자유롭게 정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의원입법으로만 논의와 담론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AI, 시민 사회 등 모든 범주에서 형성될 수 있게 된다. 법률, 행정 절차 등과 관련된 데이터를 공개하고 민간 부문에서도 정책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국회는 강력범죄자들의 신상공개와 관련해 칼을 빼 들었다. 대부분 옛날 사진만 공개해 신상공개 효과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데 반해 정부는 피의자 동의 없이도 새로 사진을 찍어 공개할 수 있게 법안을 변경하기로 했다. 이는 피의자 머그샷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세계 흐름에 맞춘 발걸음이고, 피의자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조치였다. 사법체제의 굳건함은 법률의 공백 메우기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피해를 합당하게 보상받고, 범죄자가 피해자의 고통에 상응하는 죗값을 받는 사회에서 살기를 원할 뿐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경In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