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법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실제로 구속하는 법률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법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보통 ‘법’이라고 부르는 것의 범위는 너무도 넓다. 국회에서 만든 법률 말고도,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와 규칙, 고시, 예규, 훈령, 지침, 규정, 운용요령 등까지도 ‘법’이라는 말로 통칭된다. 이유는 그곳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최소한 ‘법규적 효력’이 있는 것만을 법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 법규적 효력이 있다는 말은 그 법의 규율 대상이 되는 국민에게 효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를 대외적 효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가 법이라고 부른 것 중에는 국민에게는 효력이 없고 정부 소속 공무원들이 업무를 추진할 때 지켜야 하는 내부적 기준으로만 효력이 있는 것도 있다. 이를 대내적 효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법의 가장 큰 특징을 국민 모두에게 강제력이 있다는 것으로 포착한다면, 법규적 효력이 있는 것만을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은 국회에서 만든다. 그런데 국회에서 세상만사 모든 일을 다 알기도 어렵고 안다고 해도 변화무쌍한 일을 모두 미리 다 예상해서 규율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정부가 정하도록 위임한다. 정부는 이렇게 위임된 사항과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한 사항을 담아 법규명령(대통령령, 총리령·부령)을 제정한다. 법규명령은 보통 법명 옆에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법률과 법규명령을 합하여 ‘법령’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과 그 법률을 집행하는 범위 내에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하는 자치법규인 조례와 규칙은 그 지역적 범위에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
이외의 것은 어떤가. 원칙적으로 정부가 스스로 제정한 그 밖의 규정들은 ‘행정규칙’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 행정규칙은 원칙적으로 법규적 효력이 없다.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그것이 법령을 통해 위임한 범위 내에서 법규적 효력을 갖는 경우가 예외적으로 있을 뿐이다(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그렇기 때문에 행정규칙을 법이라고 부르려면 적어도 그 행정규칙의 내용과 관련된 법령과 자치법규에서 정부에 그런 내용을 별도로 제정할 권한을 주었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이같이 법을 분별하는 시선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행정권력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행정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KS인증 제도의 근거가 되는 산업표준화법은 KS인증을 받은 제품에 대한 시판품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제20조에서 두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에서 직접 정하기 어려우니 ‘대통령령’으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라고 위임했다. 그래서 산업표준화법 시행령 제27조에서는 시판품조사를 ‘판매되는 제품 중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는, 갑자기 산업표준화법 시행령에서 아무런 ‘위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법 시행규칙에서 ‘판매되는 제품’에서 시료를 채취하지 않고도 ‘서류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시판품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둔 적이 있다. 이는 위임받은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법규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법원에서도 그 시행규칙의 규정은 효력이 없다고 판단해 시판품조사의 결과로 내려진 행정처분을 취소한 사례가 있다.
예전에 주택법 시행령 제55조의4에 관련해서 제정된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3-356호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제19조 제1항에 의하면 ‘사업종류별로 해당 법령에 따른 면허 및 등록 등을 마치지 아니한 자는 경쟁입찰에 참가할 수 없으며, 입찰에 참가한 경우에는 그 입찰을 무효로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위 고시에 따르면 ‘법령에 따른 면허 및 등록 등을 마치지 아니한 자’여서 입찰에 참가할 수 없는 자가 그 입찰에 따른 계약의 효력을 주장하는 사례에서, 법원은 위 고시는 ‘행정규칙으로서 법규적 효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그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제 ‘법이 그렇단다’라고 막연히 이야기하지 말자.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법이 아닌지를 잘 따져보는 야무진 시민이 되어야 권리도 지키고 국가의 법치행정도 발전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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