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널리즘,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높은 기여자로 꼽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뉴욕시에 위치한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선정위원회가 관리한다. 헝가리계 미국인 조지프 퓰리처가 남긴 유언에 따라 50만 달러의 기금으로 1917년 만들어졌다. 현재는 언론 14개 부문, 예술(문학·음악) 7개 부문에 걸쳐 수여되고 권위와 신뢰도가 높아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퓰리처상의 사전적 의미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 낸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 1973년 이 상을 받았고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보도해 전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킨 보스턴글로브의 기획취재팀 스포트라이트가 2003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에는 미국 플로리다반도 서부 멕시코만 연안의 항만도시 탬파베이에 위치한 납 제련소 ‘고퍼 리소스’를 둘러싼 산업재해를 심층 보도한 탬파베이타임스 기자 3명의 기사 ‘포이즌드(POISONED)’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취재에만 1년 6개월이 걸린 이 기사를 위해 기자들은 수천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검토하고 100명에 가까운 전·현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공장 주변의 토양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납 검사관 교육도 이수했다. 기사에는 “끈질긴 취재의 끝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달렸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올해 주목할 만한 변화를 시도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취재 수단의 하나로 인정하면서 보도 과정에 이를 활용했을 경우 그 사실을 밝히도록 했다.
올 2월 미디어전문 사이트 니먼저널리즘랩에 따르면 올해 응모작 1200편 가운데 45개 기사가 최종 후보에 올랐는데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사가 5건이나 된다.
“AI는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고 5년 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인류에게 열릴 것이다.”
지난해 11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개인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굳이 게이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생성형 AI가 인류의 삶과 미래를 예측하는 데 ‘상수’로 자리 잡은 상황을 감안할 때 선정위원회의 결정은 시대의 당연한 흐름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소위 기자들의 ‘발품’을 최고의 덕목으로 평가해왔던 언론의 전통에 비춰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선정위원회는 지난해 관련 정책을 논의하면서 “악마가 다가오고 있다”는 거친 표현까지 사용하며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생성형 AI를 활용해 ‘더 나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금지할 경우) 뉴스룸이 혁신적인 기술을 반영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고 위험 요소뿐 아니라 가능성과 기회에 대해서도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글로벌 미디어 업계의 생성형 AI에 대한 헤게모니 전환 시도와 맞닿아 있다. 세계신문협회는 최근 내놓은 ‘2023 월드리포트’에서 생성형 AI가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크게 위협할 것이라는 방어적 인식에서 벗어나 생성형 AI가 생산한 콘텐츠에 대한 우위를 점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생성형 AI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기자와 언론에 ‘대체하기 힘든’ 능력을 키우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변신이 요구된다. 진화를 거듭하는 생성형 AI는 쉼 없이 지식산업의 생산성과 사회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고 기자들의 밥줄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진보와 개혁을 위해 싸워라. 철저하게 독립적이어야 한다. 약탈적인 금권에 의한 것이건 약탈적인 빈곤에 의한 것이건, 무엇이든 잘못된 일을 공격하는 걸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퓰리처가 남긴 이 말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저널리즘의 핵심을 꿰뚫으면서 기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화두를 제시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기자들의 역할이다. 발로 뛰는 기자의 가치를 지켜가는 과정이 생성형 AI와의 조화로운 ‘공존’이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곧 확인할 수 있다. 퓰리처상 후보작들은 올 5월 8일 수상작 발표와 함께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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