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미중 갈등과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불경기에 신음하고 있다. 여기에 자국중심주의와 민족주의적 성향의 각자도생 기조를 앞세워 협력보다는 경쟁과 갈등에 함몰돼 있다. 특히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던 중국 경제가 공전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미중 갈등 사이에서 시달리는 한국 역시 양쪽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는 한중 관계를 견인했던 경제 교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한한령 같은 ‘경제력 무기화’가 양국 경제 관계를 축소시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 경제 체제가 산업적·기술적으로 예전과는 다른 구조적 변화를 맞이한 것이 본질이다.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정책과 미국의 다양한 규제가 역설적으로 중국의 대체재 확보를 촉발했고, 이는 한국의 대중(對中) 중간재 공급 구조를 변화시킨 대표적인 예가 됐다.
이제 한중 경제 관계는 과거와 같은 형태의 경쟁과 보완 체제가 아니다. 지난 30년간 흑자 기조를 유지하던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해 처음 적자로 돌아섰고 중국 경제가 부동산 위기 등으로 신음하자 한국에서는 중국 시장 무망론이 크게 회자됐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시장이다. 과거보다 경쟁성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통상 국가 한국에 인접국 중국은 여전히 경제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의 첨단 기술 규제에도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중국은 주요 첨단사업 분야에서 이미 2022년 한국을 추월했다. 한국은 반도체와 2차전지·디스플레이나 수소 분야 정도에서만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기술들이 세계적 우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기술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중 경제 교류가 정치·외교적 경색 국면의 영향을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재계와 민간을 중심으로, 특히 지방정부 간의 경제 교류 확대 시도가 이어지고 있어 다행이다. 중국 정부도 경제 산업 측면에서 한국에 크게 아쉬울 게 없어 보이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과 산업망·공급망 연계 강화와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의 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중국 경제와 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접근을 위해서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정확한 재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양국이 북핵 문제나 미중 갈등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은 한국에 프런티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거대 시장으로서, 분야와 지역에 따라서는 제조업 기지로서, 또 공급망 기지로서의 역할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시장 분석과 기회 창출로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성과도 연결된다.
한중 양국은 적어도 경제적으로 양자 갈등을 완화해야 할 분명한 동기가 있다. 양국의 국제 정치·외교적 이익 지향점은 다르더라도 실익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을 분리하는 경제 채널의 다각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한중 관계 차원에서도 민간과 지방 중심의 경제 교류 확대 추세가 양자 관계 재정립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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