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모자와 짧은 머리.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와 높은 구두, 빨갛게 칠한 입술까지. 100년 전 ‘모던걸’ 혹은 ‘신여성’이라 불리던 여성들의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이들은 서양의 옷차림을 하고, 여전히 유교적 가치관이 주류였던 조선 말기에 자유를 갈망하며 진보적인 생각을 사회 곳곳에 전파했다. 그래서 ‘모던걸’ 보다는 ‘못된 걸’로 불리기도 했다.
국립정동극장이 국립정동극장예술단 정기공연으로 100년 전 서울 정동의 모습을 묘사하는 연희극 ‘모던 정동’을 선보인다. 작품은 2024년을 살아가는 현대의 인물 유영이 100년 전 정동으로 돌아가 당대의 모던걸 화선과 연실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작품의 장르는 일반 관람객에게는 다소 낯선 ‘연희극’이다. 지난달 30일 정동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 참석한 정성숙 예술감독은 “'연희'가 타악, 풍물, 농악 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과거에는 공연예술 전반을 ‘연희’라고 일컬었다”며 “이번 작품은 ‘연희’의 개념을 확장해 악과 무를 선보이는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춤이다. 스토리를 설명해주는 두 명의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은 70분 내내 생생한 표정을 하고 한국 창작 춤부터 스윙, 신민요춤, 재즈, 레뷰 댄스까지 다채로운 춤을 선보인다. 관객들은 춤과 얼굴 표정 만으로 당시를 살던 모던걸·모던보이들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과거 처음 영화관이 생겼을 때를 재현한 듯한 ‘극중극’ 만담 장면을 삽입해 관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나아가 ‘사의 찬미’, ‘봄맞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가요도 함께 들어볼 수 있다.
1920~30년대 정동은 근대 문화의 출발지면서 동시에 치욕의 공간이었다.제작진은 작품 속에서 정동의 변화와 정동을 대하는 우리의 양가적 감정을 반영하는데 집중했다. 춤과 음악은 모던걸·모던보이들의 낭만을 보여주는 장치다. 반면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작사한 ‘거국가’를 극중 배경음악으로 선택해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탄압에 좌절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함께 묘사한다. 임영호 연희 감독은 “사실 일제 강점기는 연희자들이 전통 연희를 할 수 없는 시기였다”며 “흥으로 한으로 풀어내는 무대를 꾸미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5월1일부터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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