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30일 긴급 심포지엄을 열고 의료개혁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다. 서울대 의대 재학생부터 전공의, 교수, 정치인까지 다양한 직역의 의료인이 발표자로 참여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의대증원 드라이브와 필수의료 패키지를 백지화하라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이날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제일제당홀에서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주제로 긴급 심포지엄을 열었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은 인사말에서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은 전 세계와 비교해도 매우 우수한 시스템이었으나, 단 두 달 만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며 “정부는 단지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이 진정한 의료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씌워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그러면서 "작금의 사태를 유발한 데는 정부의 잘못이 제일 크지만, 수십년간 의료 관행을 당연시해온 의사들, 특히 교수들의 잘못도 명백하다"며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 등과 제대로 토론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불통과 독선으로 의료계 對 국민 갈등 부추겨” 눈물 쏟아낸 전공의 대표
발제자로 참여한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전공의는 전문직이자 수련생이자 노동자”라고 강조한 뒤 “(이번 사태에서) 전공의들은 젊은 의료전문가로 전문성을 외면 받았고, 교육받을 권리를 무시당했고,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등을 통해 직업선택의 자유와 노동자로서의 자유를 박탈당했다”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전 국민의 공공의 적이 됐고 전공의들이 몸을 기댈 곳은 사라졌다”며 “정부는 불통과 독선으로 의료계와 국민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의대증원 정책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백지화 등 전공의들의 7대 요구사항을 다시 강조하며 “정부가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인정하고 진정한 의료개혁을 위해 입장을 전면 재검토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 교수들은 박 대표의 발표를 들으며 함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서울대 의대 학생 대표는 "정부는 교육 현장을 잘 이해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준비했다는 듯이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학생들은 정부가 의료와 의학을 위한다는 진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진심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현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 “의료문제를 황우석 사태 때처럼 과학이 아니라 여론으로 재단” 강조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부의 2000명 증원정책이 비과학적이라고 조목조목 근거를 댔다. 강 교수는 “정부는 2000명을 추계한 원자료를 잘못 인용했으며, (가설이) 100% 맞는다는 과학적 주장은 거짓으로 과학자의 상식선에서 알 수 있다”며 “2000명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자료가 없는 데다 이들이 지역필수의료를 담당할 것이라는 가설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또 의료계를 향해 과학적이고 통일적인 안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며칠 만에 의료계 단일안을 내놓으라는 건 정부가 의대증원을 과학이 아닌 협상으로 본다는 것”이라며 “과학이 아니라 여론에 흔들린 과거 사례는 황우석 사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경 캐나다 토론토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는 '캐나다 의사가 바라본 한국 의료의 문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캐나다의 의료사고 배상제도를 설명하며, 한국도 의료사고에 대한 정부 배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캐나다에는 CMPA(Canadian Medical Protective Association)라는 비영리 의료사고 보험기관이 있고, 캐나다 의사의 95%가 이 기관의 의료사고 배상제도를 이용한다"며 "레지던트의 경우 약 2900달러의 연회비를 지급하면 주정부가 80%에 해당하는 2600달러를 지원해 돌려준다. 산과 같은 위험과는 의사가 5만8000달러를 내면 주정부가 5만1000달러를 돌려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소아과의 경우 하루에 많은 환자를 볼 수 없어서 수가를 높여도 수익을 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며 "북미에서는 소아과 의사에게 월급제를 적용하고, 도네이션(기부금)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이를 포함한 월급을 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개괄'을 주제로 발표한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는 "정부는 비급여를 탓하면서 초저수가 문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며 "한국의 내시경 수가는 4만2000원 수준인 데 반해 영국은 공공병원마저도 수가가 60만원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공의들이 병원을 나가자 그간 극도로 효율적으로 운영되던 병원이 돌아가지 않고 병원 매출이 반토막 난 것은 그간 의료시스템이 박리다매로 유지돼 온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필수의료 위기가 시장실패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무시한 규제 때문에 발생한 정부 실패의 결과인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비전문적인 행정관료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한국 의료 거버넌스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주환 서울의대 교수는 '의사 수 추계 연구: 목적론과 방법론, 그리고 한계'를 주제로 발표하며 "은퇴하는 의사가 약 2000명이고, 의대 정원은 3000명이기 때문에 매년 의사가 1000명씩 늘었고, 의사 은퇴 연령도 연기되면서 지난 10년 새 의사는 2만명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늘어난 의사는 지방이 아닌 서울로 갔다"며 "이러한 자연 실험 결과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의사들이 지역으로 안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2018∼2022년 인턴과 레지던트 지원자 수는 계속 증가하면서 전공의 숫자가 자연 증가했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줄었다"며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도 현재의 경향을 따르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정부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환자·의료소비자 단체 대표들도 참여해 현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안상호 선천성심장병 환우회 회장은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의·정 갈등에 환자가 생명을 잃지 않는 것, 의사나 노조의 파업으로 피해를 입지 않는 것, 지속가능한 의료 환경을 위해 왜곡된 의료를 하루빨리 개혁하는 것"이라며 "환자와 의사가 신뢰를 회복하고 협력해 수가, 형사처벌특례, 비급여 등에 대해 하나씩 의견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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