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고물가 기조 장기화에 따른 피해가 저소득 소비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식품 대기업들은 저소득 가계들이 더 이상 가격 상승분을 감당할 수 없어 식비마저 바짝 조이고 있다며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언 보든 맥도날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4월 30일(현지 시간) 1분기 실적을 발표한 후 “소비자들의 돈을 쓰는 방식이 확실히 차별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부유층의 소비는 강한 회복력을 보인 반면 소득이 낮은 소비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맥도날드의 1분기 전 세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늘어나 시장 예상치(2.1%)를 밑돌았다. 맥도날드는 “가난한 고객들은 패스트푸드 소비를 줄이는 대신 집에서 요리하기를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1분기 선방한 실적을 거둔 코카콜라 역시 소비 둔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존 머피 코카콜라 CFO는 “저소득 소비자의 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북미 지역의 식당·술집 등에 대한 판매가 예상보다 저조했다”며 “(저소득층이) 구매력 약화에 따라 소비 방식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네슬레의 경우 간편식, 냉동 제품 판매 부진으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했다. 안나 만즈 네슬라 CFO는 “식품 혜택 프로그램 축소와 지속적인 물가 상승으로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50% 줄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북미 음료 사업부의 판매량이 5% 감소한 펩시코의 라몬 라구아르타 최고경영자(CEO)도 “저소득 소비자들이 월말까지 예산을 맞추기 위해 긴축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짚었다.
고물가 부담이 커지자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더 많은 저가 매장들을 찾아다니는 등 발품을 팔고 있다. 데이터 분석 업체 뉴머레이터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최근 1년간(2023년 3월~2024년 2월) 평균 20.7개의 소매 업체에서 식료품을 구매했다. 이는 4년 전과 비교하면 23% 증가한 수치다. 할인 혜택이나 행사를 활용하는 소비자들의 수도 늘어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식료품이 가계 예산에서 30년 만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많은 이들이 만족스러운 소비를 위해 이동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저소득층에 집중되면서 소비 격차 역시 심화하는 모습이다. 씨티그룹은 1분기 소매 업체 신용카드 사용액은 줄어들었지만 전체 신용카드 지출액은 외려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제인 프레이저 씨티 CEO는 이 같은 양극화를 “K자형 경제”라고 부르며 “우리는 저소득 고객들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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