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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그래서 내일이 두렵지 않은

분열이 가져온 양극화의 시대에도

“합리적 시민사회 존재한다”는 믿음

총선 결과로 팬덤 넘은 민의 확인돼

정치권도 밖으로 나와 통합 모색해야





3년 전 새해가 막 시작된 즈음에 쓴 필자의 칼럼 제목은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고애신의 독백을 인용한 제목이었다. 본문에는 이렇게 적었다. ‘드라마 대사 한 줄에 이토록 마음이 시린 것은 시대는 다르나 불안함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문재인 정권의 후반기는 오만과 독선의 협주곡, 그 자체였다. 대화와 타협은 거부당했고 결말은 분열이었다.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 그 극단의 시대가 불안했고 미래는 두려웠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특정 진영 어느 한쪽의 팬덤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래서 엄연한 팩트의 자발적 왜곡 혹은 거부가 일상이 된다면. 그런 환경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와 대의정치가 정상이라 할 수 있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대에 ‘글쓰기’ 따위가 얼마나 공허하고 부질없는 짓인가.

그로부터 3년여, 정치권의 갈등 조장 기술은 나날이 정교해 짐을 확인하고 그렇게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느껴졌을 때 선거판은 다시 열렸다.

예상했던 대로 거대 진영의 충돌과 맹목적으로 보이는 팬덤들의 환호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무렵 우연히 읽은 책의 저자는 이런 머리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사회가 아무리 양단, 혹은 그 이상으로 나뉘어서 지금과 같은 비합리적 쟁투를 계속한다 해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것은 합리적 시민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석희, 장면들)

“합리적인 시민사회가 존재한다고?” 선배 언론인의 깊은 고민과 실천 끝에 나왔을 믿음에 대해서도 되풀이해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요란했던 선거는 끝이 났다.

국민이 선택한 결과를 앞에 놓고 다시 자문했다. ‘이것이 합리적 시민사회의 집단지성인가?’ 한두 번의 선거로 무엇이 확인됐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민심에서 드러난 메시지는 선명하고 또 절묘했다.



물론 이번에도 정치권이 만들어 놓은 갈등에 동원된 팬덤이 큰 힘을 발휘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방탄’과 ‘사당화’의 벽을 넘었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위선’의 늪을 건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192석이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복잡한 숫자를 나열할 필요도 없다. 지역구 곳곳에서 확인된 ‘지국비조(지역구는 국민의힘, 비례는 조국혁신당)’가 많은 것을 설명한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초심을 일찌감치 잃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30%를 간신히 넘었던 지지율은 20%대 초반에서 불안하게 횡보 중이다. 회복 가능할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국민의 안녕을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면 취임 2주년을 맞는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의 취임사를 고쳐 써 보기를 권한다. 다시 쓰는 취임사에는 2년 전 단 한 번도 불리지 않은 ‘통합’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국민이 요구하는 소통과 협치는 대통령 스스로 통합을 우선순위에 둬야 가능하다. 또 그래야 철 지난 이념 논쟁과 소모적인 정쟁이 설 자리를 잃는다. 대통령부터 자신의 생각만 더욱 증폭되는 ‘에코 체임버’를 깨고 밖으로 나와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회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대통령뿐이랴. “중립은 없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야권 인사들은 거물이 아닌 괴물이 되어갈 뿐이다. ‘누군가가 너무 싫어서’ 차선도 아닌 차악이라는 이유로 받은 선택의 유효 기간이 천년만년일 거라는 기대는 과대망상 아닌가. 돌이켜 보면 국민의 선택으로 돌아온 부메랑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정치 성향을 묻는 여론조사에는 언제나 30% 이상을 차지하는 무당층이 있었고 나머지 60% 중 다수도 ‘묻지마’ 추종은 하지 않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념과 진영에 갇혀 있지 않아 자유로운 그들이, 필요할 때 뚜렷한 목소리로 노련한 스윙보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 그들이 극단의 시대에 균형을 맞추고 통합을 꿈꾸게 하는 ‘합리적 시민사회’의 구심점이었던 것일까.

어찌 됐든 그들 덕분에 필자도 ‘내일이 두렵지 않은’ 이유와 용기를 되찾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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