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이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 시장에서의 가스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25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2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가스프롬은 지난해 6290억 루블(약 69억 달러, 9조 4000억 원)의 순손실을 내면서 1999년 이후 최대 손실을 냈다. 2022년 1조 2300억 루블의 순수익을 거둔 것과 비교하면 ‘쇼크’ 수준의 성적표다. 실제 이날 실적이 공개된 후 러시아 증시에서 가스프롬의 주가는 배당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 4.4% 급락, 1년 만에 최대 폭의 하락을 보였다.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급감한 가스 판매량이다. 지난해 가스프롬 매출은 전년 대비 30% 감소한 8조 5000억 루블(약 127조 8000억 원)이었는데, 이중 가스 판매 매출이 8조 4000억 루블에서 4조 1000억 루블로 반 토막났다. 특히 러시아 외 가스 판매 수익이 2022년 7조 3000억 루블에서 지난해 2조 9000억 루블로 급감했다. 유럽 시장이 쪼그라들면서다. 러시아 애널리스트들은 손실에 대해 “한때 유럽 에너지 공급에 강력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던 가스프롬이 유럽(EU) 시장 상실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달리 유럽은 가스프롬을 대체할 다른 공급원을 찾는데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오며 가스프롬의 전망에는 그늘이 졌다. EU 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의 유럽 가스 수입 점유율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인 2021년 40%에서 2023년 8%로 크게 줄었다. 또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가즈프롬에서 유럽으로 향한 가스관의 물동량은 1970년대 초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스프롬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석유 부문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실제 석유와 석유제품 수익은 전년 대비 4.3% 늘어난 4조 1000억 루블로 서방의 제재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사업의 핵심인 가스 부문이 흔들리며 발생한 손실이 워낙 막대해 석유 판매로 메우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베를린의 세르게이 바쿨렌코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센터 선임 연구원은 “가스프롬은 한때 석유사업인 가스프롬네프트를 부수적으로 운영하는 거대 ‘가스 회사’였지만 지난해는 가스프롬네프트가 가스프롬의 가스 사업만큼의 매출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FT는 가스프롬이 유럽을 대체할 궁극적인 구매처로 중국을 생각하는 듯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중국의 천연가스 소비량은 그리 크지 않아 가스프롬의 가스 수출량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의 10년간 연평균 가스 수출량은 2300억 입방미터였지만 지난해는 220억 입방미터에 불과했다. 크레이그 케네디 전 뱅크오브아메리카 부의장은 “유럽에서의 매출 손실은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다만 전쟁으로 인해 ‘전쟁 전 모델’은 이제 지속 불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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