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채상병 특검법’에 이어 ‘김건희 특검법’ 등 여당과 정쟁이 격화할 법안들만 챙기면서 민생·경제 법안들은 대거 좌초될 위기에 몰렸다. 민주당이 원내 지도부를 강경파 일색으로 꾸린 데다 신임 국회의장 후보들도 ‘명심(明心)’만을 앞세우고 있어 22대 국회에서도 민생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이 2일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단독 처리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 합의로 어렵게 만들어진 협치 분위기는 하루 만에 증발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채상병 특검법에 10번째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검토하자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더해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 ‘술자리 진술 조작 회유 의혹’에 대해서도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공세를 펴고 있다.
21대 국회를 20일가량 남겨 놓고 민주당이 투쟁 기조를 지속함에 따라 시급한 민생·경제 법안들은 일괄 폐기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 지역에 관한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원전을 계속 가동하려면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할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설치가 필요하지만 민주당이 원전 설계수명 동안 폐기물만 저장할 수 있도록 용량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다. 이대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설치는 최소 1년 이상 늦어진다.
재정준칙 법제화(국가재정법 개정안) 역시 감감무소식이다. 정부가 지속된 확장 재정에 제동을 걸었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50%를 넘어섰는데 민주당이 여전히 재정준칙 도입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수 경제가 어려운 만큼 민주당은 총선 공약인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도입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K칩스법(반도체지원법)’이라고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일몰 연장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당장 올해 안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내년부터 반도체 기업들의 세 부담이 두 배로 커지게 된다. 반도체 대기업의 설비투자 공제율이 기존 15%에서 8%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출신인 양향자 개혁신당 의원이 지난해 일몰 기간을 2030년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내놓았지만 21대 국회 내 처리가 요원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기술 유출자에 대한 벌금 상한을 대폭 상향하는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를 완화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지방세법 개정안’, 노조 회계 공시 의무를 법조문에 명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에 관한 법률’도 21대 국회 내 통과는 물 건너간 모습이다.
민주당은 9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살펴본 뒤 20일 남은 21대 국회 운영 기조를 정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이 영수회담에서 밝히지 않은 국정운영에 대한 사과나 채상병 특검법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면 지금의 강경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22대 국회 전망은 더욱 어둡다. 민주당은 이미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를 비롯한 강경 원내지도부 구성을 완료한 상태다. 더욱이 여야 협치의 ‘최후의 보루’인 국회의장 후보들마저 ‘중립 포기’를 앞세우고 있어 여야 간 정쟁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여야 협치와 민생 회복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협치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다수당인 민주당의 책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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