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재정 적자가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투자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의 론 오핸리 회장은 “앞으로 5년 안에 재정 적자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미국은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글로벌 금융계 거물들도 “미국이 재정 통제력을 잃게 된다면 이는 전 세계적 리스크” “(경기 부양 재원 부족으로) 미국이 다음 경기 침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등의 지적을 쏟아냈다. 올해 1월 ‘전미경제학회 연례 총회’에서도 경제 석학들은 ‘미국이 과도한 재정지출과 정부 부채를 방치하면 인플레이션과 국가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미국은 기축통화국이라 국채를 발행해도 중국·일본 등이 사들일 수 있고 늘어나는 해외 이민자들이 재정 적자와 고령화로 인한 충격을 덜어준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D1)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400조 원가량 급증해 지난해 1126조 7000억 원에 이르렀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50.4%를 기록했다. 또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7조 원에 달했다.
이런데도 우리나라 여야 정치권은 돈 풀기 경쟁으로 나라 곳간을 거덜 내고 있다. 박찬대 신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3조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법안을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초연금을 현행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대선 공약을 최근 다시 거론했다.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한 것은 ‘최후의 보루’인 재정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혈세로 선심 쓰기’ 경쟁을 계속 벌이면 재정 적자 규모가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해 국가 신인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지금 경제 회복세를 감안하면 현금 지원 효과는 작고 물가 급등의 부작용만 커질 것이다. 모든 국민이 아니라 취약 계층과 영세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지원을 두텁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3% 이내로 유지하는 내용을 담은 재정준칙 법제화도 서둘러야 한다. 지속 가능한 나라와 미래 세대를 위해 포퓰리즘 경쟁을 자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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