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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대상 코인 다단계까지 판치는데…예방교육 예산은 반토막

[노후자금 노리는 검은손]

<중>'방파제' 없는 노후 사기

디지털배움터 예산 400억 삭감

교육일정 밀리고 접근성 떨어져

금융사기 예방수업 서울 3개구뿐

AI 등 신종수법 관련 교육은 '0'

전담부서 설치 등 적극 대응 시급





70대 D 씨는 지인의 소개로 한 조합의 직원 E 씨를 소개받아 현장 투자설명회에 참석했다. 쇼핑몰 플랫폼을 통해 낸 수익으로 평생 연금처럼 매월 확정 수익금을 지급한다는 말에 솔깃한 D 씨는 은퇴자금 일부인 3000만 원을 조합에 투자했다. 다단계로 운영된 이 조합은 처음에는 수개월간 확정 수익금을 지급하더니 어느 시점부터 자체 개발한 가상지갑(월렛) 플랫폼을 이용해 자체 개발 코인을 수익금으로 지급한다고 통보했다. D 씨가 코인을 현금화하려고 하자 조합 측은 전산 장애 등을 사유로 차일피일 연락을 피하다가 이내 완전히 잠적했다.

기존에 유행했던 보이스피싱·스미싱에서 이제는 주식 리딩방에 가상자산을 활용한 다단계까지 노인을 상대로 한 사기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물론 정부 유관기관마저 마땅한 예방책을 내놓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대부분의 사기가 사이버 공간을 매개로 이뤄지지만 노인들의 사기를 예방할 교육 예산은 올 들어 반 토막이 난 것으로 집계됐다.

8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 따르면 디지털배움터 사업 운영 예산은 지난해 698억 원에서 올해 297억 원까지 60% 삭감됐다.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별로 살펴보면 예산이 최대 4분의 1 토막까지 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에 배정된 예산은 지난해 94억 2840만 원에서 올해 23억 9620만 원으로 무려 75%가 깎였고 부산(73%), 전남(62%) 순으로 감소율이 높았다. 특히 전남의 경우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중이 26%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만큼 타격이 더욱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0년부터 ‘디지털 격차 해소 기반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 온 디지털배움터는 다양한 취약 계층 중에서도 디지털 이해도가 떨어지는 고령층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았다. 실제 수강생 역시 2022년 56.1%, 지난해 58.3%가 60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층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제주도 산간 지역의 한 수강생이 수업 시작 직전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아 강사가 이를 재빠르게 인지하고는 경찰에 신고해 피해를 예방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예산 삭감의 여파는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 당장 예년 같았으면 올해 4월에 시작됐어야 할 교육 과정이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상황이다. 사업을 운영하는 과기부 산하 NIA 측은 “예산 급감으로 인해 사업 전반을 재정비하면서 일정이 다소 밀렸다”며 “올해 6월쯤에는 교육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운영 방식도 대폭 손질할 예정이다. 전국 1000곳에 달했던 배움터의 운영을 포기하는 대신 상설 거점 센터를 총 35개 설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연중 상시 오픈돼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자체별로 센터가 2~3개에 불과해 교육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NIA 측은 이에 대해 “배움터를 줄이는 대신 경로당·복지관 등에 강사가 찾아가는 파견 교육을 늘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정부 산하 디지털배움터 예산이 대폭 삭감된 가운데 지자체 차원에서도 금융 사기 관련 노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은 전멸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신문이 서울시내 25개 구청을 전수조사한 결과 중장년·노년층 대상 금융 사기 예방 수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곳은 중랑구·광진구·양천구 단 세 곳뿐이었다.

일회성 강의와 타 정기 교육 과정 도중 진행되는 ‘틈새 강의’, 구내 기타 기관(노인종합복지관·경로당·주민센터 등) 주도로 진행하는 경우까지 포함해도 총 18곳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불법 판매장, 보이스피싱 등 기존 금융 사기에 국한된 강의로 인공지능(AI)과 가상자산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한 신종 금융 사기와 관련된 교육을 진행하는 곳은 아예 없었다.

관련 기관들 역시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금융투자협회 등 7곳의 금융 유관기관이 공동 설립한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에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 사기 예방 관련 강좌가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위원회 산하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가 노인 대상 금융 사기 교육 역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연극 형태의 교육을 연간 40개 기관에 각각 1회씩 지원하는 데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교육 강화는 물론 지자체 차원에서 전담 부서를 설치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정부·지자체는 물론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매체를 통한 교육을 실시해 노인들의 사기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며 “또 사기 관련 대응을 경찰에만 맡기기보다 전담 부서를 만드는 등 지자체 차원에서도 재정·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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