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재와 같이 보건의료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에 올랐을 때 외국 의사면허를 소지한 사람도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의료계와 의대 정원 증원을 두고 갈등하면서 빚어진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자, 다급해진 정부가 이를 메울 방안 중 하나로 외국 의사면허 보유자까지 꺼내든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8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오는 20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보건의료와 관련해 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발령되면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도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종전에는 외국 의사면허가 있어도 한국에서 예비시험과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었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지난 2월 19일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병원에서 이탈하자 같은 달 23일 오전 8시에 보건의료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끌어올렸다. 보건의료 위기경보 단계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 4단계로 구성돼 있다.
복지부는 시행규칙 개정 이유로 “보건의료 재난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 부족에 따른 의료 공백에 대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외국 의료인 면허를 가진 자가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외국 의사의 경우에도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적절한 진료역량을 갖춘 경우에 승인할 계획”이라며 제한된 기간 내 수련병원 등 정해진 의료기관에서 국내 전문의의 지도 아래 사전 승인받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위기경보 ‘심각’ 단계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구성하고 비상진료체계를 꾸려 의료 공백에 대응하고 있다. 군의관·공중보건의를 수련병원에 투입하고 있으며, 개원의의 경우 3월 지자체장 승인 하에 파트타임 형태로 수련병원의 진료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가 지난달에는 이를 복지부 장관의 승인만 있으면 가능하도록 간소화했다.
하지만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도 사직과 휴진에 나서면서 의료 공백이 길어지고 더 커질 것으로 보이자, 외국 의사면허 소지자까지 동원해 비상진료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앞서 3일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확정하면 1주일간 집단 휴진하고, 10일에는 전국적 휴진을 예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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