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법리적 설명보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고 ‘채상병특검법’에 대해서는 “가슴 아프다”며 ‘조건부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의 국정 운영에 대해 부족했다고 수차례 인정하면서도 “국정 기조의 일관성은 유지하고 고쳐야 할 것은 세심하게 가려 고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100분 가까운 기자회견에서 4·10 총선에서 여당 참패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총선은 정부에 대한 국정 운영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며 “체감하는 변화가 많이 부족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직접적인 ‘사과’ 표현도 나왔다. ‘야당을 중심으로 김 여사에 대한 특검 요구 목소리가 높다’는 지적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사과드린다”는 표현은 참모들과 사전 논의 없이 윤 대통령이 즉석에서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의정 갈등 장기화 등 현안에 대해 “송구” “죄송” 등의 표현으로 유감을 표시해왔지만 ‘사과’라는 단어를 언급한 건 취임 후 처음이다. 쇄신의 진정성을 표시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다만 야당이 요구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김여사특검법’에 대해서는 “모순” “정치 공세”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특검은 검경·공수처 같은 기관의 수사가 봐주기나 부실 의혹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2년 반 정도 저를 타깃으로 치열하게 수사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할 만큼 해놓고 또 하자는 것은 특검의 본질이나 제도 취지와는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특검 수용이 현행 수사와 사법 절차를 무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채상병특검법’도 수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공수처는 채 상병 사망 사고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해 7일 정부에 이송된 ‘채상병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은 조만간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공수처의 수사 결과에 미진함이 있다면 “제가 먼저 특검을 주장하겠다”며 ‘조건부 수용’ 방침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장래가 구만리 같은 젊은 해병이 지원 작전 중 순직한 것은 국군통수권자로서 안타깝고 참 가슴 아픈 일”이라며 순직 소식을 듣고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왜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해 인명 사고를 나게 하느냐”고 질책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시종일관 낮은 자세를 취했지만 국정 기조의 대전환을 예고한 것은 아니다. 경제·외교·사회 등 각 분야 정책 기조는 지난 대선을 통해 모인 유권자들의 총의인 만큼 이를 바꾸는 건 ‘약속 불이행’이 될 수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다. 윤 대통령은 “시장경제와 민간 주도의 시스템으로 경제 기조를 잡는 건 헌법 원칙에 충실한 것”이라며 “기조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고쳐야 할 것은 세심하게 가려 고치겠다”고 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진행된 ‘국민보고’를 통해서도 윤 대통령은 반성과 쇄신 의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송구” “부족했다” “국민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등 발언으로 낮은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 특히 “요즘 많이 힘드시죠” “봄은 깊어가는데” 등 딱딱하지 않은 표현으로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낸 대목도 눈에 띄었다.
윤 대통령은 남은 3년 임기 동안 ‘국민의 삶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계층 이동 활성화, 성장 동력 확보 등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높이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겠다”며 국회를 향해서도 보조를 맞춰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위해 정부와 여야가 함께 일하라는 게 민심”이라며 “신뢰·대화·성의 등을 먹고사는 게 협치다. 절대 협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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