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과학소설계의 보물’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소설가 테드 창의 단편소설 ‘바빌론의 탑’. 이 책은 성경과 달리 만약 ‘탑이 끝까지 완공됐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과학 소설답게 다양한 과학 지식이 넘치지만 탑을 완공하고 ‘야훼’를 만나기 위해 천장을 뚫기 바로 전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두고 다투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자에게는 더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인간의 행동을 신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지, 인간에게 도움을 줄지, 기뻐할지, 아니면 내버려둘지 등의 의견이 대립한다. 결국 ‘신의 선의’를 믿은 인간은 천장을 뚫게 되고 예상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대략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소설과 달리 성경에서의 ‘바빌론의 탑’은 신에게 닿으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상징한다. 그래서 신은 탑을 무너뜨리고 이를 단죄하기 위해 인류에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벌을 내린다. 우리 인류는 오만함의 대가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민족, 다른 국민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외국어교육’이라는 ‘천형’을 받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성경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류는 오늘날 다시 인간을 벌한 ‘신의 의지’에 도전하고 있는 듯하다. 인공지능(AI) 이야기다. 최근 새로 산 스마트폰은 서로 다른 언어로 통화를 하더라도 실시간으로 음성 통역이 가능한 기능이 탑재돼 있다. 신이 내린 형벌이 인간이 만든 기술에 의해 다시금 도전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금융권에서도 AI 도입 물결이 거세다. 보험에서는 가장 중요한 상품 개발을 위한 위험 예측부터 보험 사기 적발에까지 AI의 힘을 빌리고 있다. 은행에서는 고객 상담을, 증권사에서는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을 AI가 대신 해준다. 얼마나 다양하게, 그리고 빨리 AI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금융사의 역량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앞으로 기술이 발달하면 다른 영역에까지 AI 적용이 빠르게 확대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하는 금융전략포럼에서 인간을 초월하는 과학기술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인간을 배제한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산업연구원은 AI의 도입으로 금융업에서는 사라질 위험이 있는 직종의 99.1%가 경영·금융전문가들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을 정도니 기우라고만 치부할 일은 아닐 것 같다. AI와 같은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을 배제하며 소외시키는 것은 우리의 또 다른 오만함일 수 있는 만큼 곁을 잠깐이라도 돌아보는 여유 정도는 부릴 필요가 있을 듯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