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무더위에 시달리는 필리핀이 공공 기관을 중심으로 ‘주 4일제’를 택했다. 싱가포르 등 이웃 국가에서 압축 근무 방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필리핀에서는 주 4일제 적용 부문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찬반 논쟁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현지 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필리핀 보건부는 올해 들어 4월까지 더위와 관련한 질병 사례가 77건으로 급증했으며 이 가운데 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필리핀은 최근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109년 만의 가장 극심한 폭염을 겪고 있다. 지난달 수도 마닐라의 체감 온도는 50도에 육박했으며 전역의 공립학교는 대면 수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무더위 피해가 커지자 지방 정부들은 잇따라 근무 방식을 주 4일제로 임시 전환했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30km가량 떨어진 카비테 지방 정부는 4월 말부터 압축 근무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7월 말까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SCMP는 “다른 지역 정부들 역시 시청과 기관 공무원들에게 주 4일 근무 명령을 내렸다”며 “다만 응급 구조원과 교통 단속원, 보건 종사자 등은 (임시 주 4일제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 역시 주 4일제 전환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재 유치 전략의 일환으로 주 4일제와 시차 근무제, 근무지 유연화 등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버겔 빙헤이 필리핀대 노동·노사관계학 교수는 압축 근무가 “근로자들의 통근 시간이 줄고 특히 극심한 더위의 영향을 완화하는 장점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어 “압축된 근무 시간은 생산성과 사기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교통비와 사무실 관련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필리핀에서는 최근 주 4일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방식에 익숙한 고용주들과 일부 직원들은 압축 근무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제조업과 농업에 특화된 필리핀의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주 4일 근무의 실현 가능성이 낮을 뿐 아니라 실현되더라도 생산성이 약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주 4일제가 비교적 수월하게 자리잡고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 기술과 금융, 서비스 부문에 중점을 둔 고소득 경제 국가다. 빙헤이 교수는 “필리핀의 경우 이와 대조적으로 (압축 근무를 적용하는 데 있어) 제한된 인터넷 연결과 원격 작업 기술 등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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