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경기도 화성의 반도체 수출 기업에서 가진 현장 간담회에서 “반도체 산업의 명운이 한국 경제의 명운”이라며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 10조 원이 넘는 규모의 지원 패키지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정책금융과 민간 펀드 등으로 재원을 만들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제조 시설 등 반도체 전 분야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을 뒷받침하기로 했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 지급 등으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가운데 우리 정부도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지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하고 527억 달러(약 75조 원)의 보조금을 앞세워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제조 공장을 빨아들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2년 반도체 생산 시설에 430억 유로(약 63조 원)를 지원하는 ‘유럽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반도체 강국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도 대만 TSMC 공장 유치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기존 63조 원의 반도체 펀드에 더해 36조 원의 추가 펀드 조성에 나섰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의 지원은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15% 세액공제 정도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올해 말에 시효가 끝난다.
국가 간 단거리 경주처럼 펼쳐지는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민관정이 원팀으로 속도전을 벌여 다양한 지원 정책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기업은 과감한 투자와 초격차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정부는 세제·예산·금융 혜택 등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당장 시설 투자 세액공제 연장 법안 처리부터 협조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과 관련해 “시간이 보조금”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반도체 업체의 미국행 엑소더스를 막기 위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첨단 반도체의 한국 내 생산 비율이 현재 31%에서 2032년에는 9%대로 급락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런 재앙을 피하려면 전략산업 보조금 지급 등 재정을 통한 직접 지원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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