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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앞길 막을라” 이 병 때문에 엄마 적금까지 깼다[메디컬인사이드]

■ 주민경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

편두통 일으키는 CGRP 분비 억제해

통증·신경성염증 차단…편두통 예방

1~3개월 주기 항체주사 활발히 처방

하루 한 번 복용하는 경구약물도 등장

이미지투데이




“선생님, 항체주사 맞아볼게요. 제 아들이라서가 하는 말이 아니라 누구보다 재능 있고 꿈도 많은 아이거든요. 부모로서 할 수 있는 한 밀어줘야지 않겠습니까.”

2022년 5월 서경자(가명) 씨가 아들과 함께 세브란스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서씨에게는 10년 넘게 편두통을 앓아온 김모군(28)이 아픈 손가락이다. 중학생 때까지 전교 10등 밖으로 밀려난 적 없었는데 불현듯 편두통이 찾아오면서 온 가족에게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됐다. 증상 초기에는 워낙 예민한 성격인 데다 입시를 앞두고 스트레스가 심해진 탓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증상 빈도가 짧아지고 지속시간이 길어지면서 학교를 빠지는 날이 잦아졌다. 집중력이 떨어지니 성적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꿈에 그리던 정보기술(IT) 기업에 입사한 뒤에도 증상은 나아지질 않았다. 아들과 함께 수많은 대학병원을 찾아다녔다는 서씨는 ‘편두통을 일으키는 원인 경로를 차단하는 항체주사가 새로 도입됐는데 1회 비용이 50만 원을 호가한다’는 설명을 듣고 어두운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 편두통 일으키는 ‘CGRP 경로’ 표적…예방치료 시대 본격 개막


지금은 제한적이나마 중증 편두통 환자에게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티드(CGRP·Calcitonin Gene-Related Peptide)’ 항체를 처방할 때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된다. 하지만 당시는 약물 도입 초기라 건보 적용 시점을 기약하기 힘들었다. 한두 번 맞는다고 증상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의료진으로서도 선뜻 권하기 쉽지 않았다. 서씨가 차곡차곡 모았던 적금을 깨고 다시 찾아온 건 그로부터 두달 여만이었다.



주민경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CGRP 수용체에 작용하는 경구용 약물이 아시아 최초로 국내 도입됐다는 소식에 오랜 기간 고생하던 환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편두통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본 증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이 편두통을 앓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편두통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8년 54만 5607명에서 2022년 60만 2906명으로 약 10.5% 증가했다. 병원을 찾는 대신 진통제를 먹으며 그때그때 통증을 가라앉히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고려하면 실제 환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 누구나 흔히 겪는 증상? 발작 잦으면 사회·경제적 활동에도 치명적


편두통은 환자마다 빈도와 강도가 다르다. 어떤 환자들은 증상이 경미해 가끔 진통제를 먹는 것만으로 조절 가능하지만 일부는 매우 심한 두통과 함께 메스꺼움·빛 공포증·소리 공포증·냄새 공포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힘들어 한다. 두통 발작이 수 시간에서 하루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직업 특성상 컴퓨터 작업이 많았던 김모군은 한번 발작이 나타나면 몇 시간에 걸쳐 심해졌는데 안구 부위의 통증이 동반돼 업무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 교수는 “편두통은 사회경제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연령대인 25~55세에 발현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손실도 상당하다”며 “편두통 발작이 한달에 3∼4회 이상 일어나거나 발작 횟수가 한달에 1~2회 정도라도 일상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적극적인 예방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두통의 발생 기전. 사진 제공=질병관리청


과거에는 편두통이 시작된 다음 진통 목적의 급성기 약물을 복용하고 더 심해지지 않도록 휴식을 취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삼차신경혈관계의 활성화가 편두통의 주된 병태생리이며 특히 CGRP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GRP는 혈장단백 방출을 유도해 혈관 확장과 신경인성 염증을 일으켜 통증을 유발한다. CGRP의 분비를 억제하면 뇌혈관 확장을 막아 염증이나 통증 발생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 항체주사보다 반감기 짧고 편의성 높여…“하루 한알 먹기만 해도 편두통 예방”


이런 원리에 착안해 개발된 CGRP 단클론항체는 두통 빈도가 너무 잦거나 강도가 심해 급성기 약물로 해결이 어려웠던 편두통 환자들의 치료에 전기를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엠갈리티(성분명 갈카네주맙)’와 ‘아조비(성분명 프리마네주맙)’ 2종이 도입됐다. 몇년 전부터 건보 적용이 되며 치료비 부담도 줄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경구용 CGRP 수용체 길항제 ‘아큅타(성분명 아토제판트)’가 출시되며 편두통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주민경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인터뷰에서 경구용 CGRP 수용체 길항제의 국내 도입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아큅타는 작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편두통 발생 빈도에 상관없이 만성 및 삽화성 편두통으로 진단된 환자의 예방요법으로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았다. 1~3개월에 한번 꼴로 주사를 맞는 대신 하루 한번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편두통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만성 편두통 환자를 대상으로한 연구에 따르면 12주 동안 아큅타 60㎎을 하루 한번 복용한 환자들은 월 평균 편두통 일수가 6.9일 감소해 위약군(5.1일) 대비 유용성이 입증됐다. 아큅타를 복용한 환자 중 월 평균 급성 두통 약물 사용 일수가 50% 이상 감소한 비율은 41%로 위약군(26%)과 차이를 보였다.

기존 주사제에 효과를 보지 못했거나 제한적인 급여 조건 때문에 혜택을 보지 못했던 환자들에게 또다른 대안이 마련된 것이다. 주 교수는 “경구제는 반감기가 짧고 복용 편의성이 높다”며 “새로운 치료 옵션이 생기면서 편두통 환자들이 통증에서 자유로운 날을 더 많이 누리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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