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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과 한류 [이경화의 하이브리드 美MI]

■미디어 아티스트 겸 건축가





올해 오스카 시상식 스크리닝 파티에 참석했었다.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이야기가 7개 부문을 휩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되는 오펜하이머는 핵분열과 핵융합의 물리학원리를 이용해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핵폭탄을 만들어냈다. 그는 인류를 구하려는 노력과 세상을 파괴할 힘을 아이러니하게도 융합시켰다.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백남준 다큐의 시사회에도 참석했다. 한국의 천재 예술가에 대한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백남준은 진공관의 음극선이라는 물리학 원리로 동양 철학의 우주 생성적 변화를 의미하는 비디오 예술의 세계를 열었다. 그는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한 인류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전자 통신의 세계와 달의 끝없는 생명력을 상징한 예술적 결과물을 융합해냈다.

백남준의 다큐멘터리는 선댄스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미국과 유럽의 최고 뮤지엄에서 상영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영화제와 주요 미술관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고, 한국 미술계와 영화계의 정치적 입장에 의해 외면당하기도 했다. 그의 예술 세계와 한국전쟁을 의미 있게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DMZ 영화제에서 주목받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백남준의 다큐멘터리는 그의 위상에 걸맞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환경, 인권, 기후 위기 등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예술가이자 사상가인 백남준은 지금 이 시기에 재조명되어 야 할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세기를 앞서 소셜미디어를 예측하고 비틀즈를 비롯한 대중예술가들 을 그의 작품에 등장시킨 백남준은 한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백남준의 정신은 특히 분열된 현재의 세계 상황에서 인류를 위로하고 연결하기 위해 재해석돼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과학 기술과 문화 예술의 융합의 힘을 통해 사회를 희망으로 이끌 수 있다는 그의 유쾌한 긍정의 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다고 본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가 화두로 여전히 뜨겁다. 오펜하이머 영화의 렌즈를 통해 원자력의 장단점을 살펴볼 수 있었듯이 백남준의 렌즈를 통해 현 상황을 살펴보자. 특히 핵전쟁의 공포가 항상 도사리고 있는 한국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여전히 분단이 고착화된 비무장지대는 현대 한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적 의미로 보면 남과 북을 가르는 동시에 동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지뢰밭 투성이며 역사적으로 아픈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곳이지만 생태적으로 오랜 세월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아 형성된 청정한 아이러니의 장소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의 개념에 잠시 집중해 보면, 이 것은 두 극이 만나 에너지를 변환하는 백남준의 진공관 구조 개념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 아시아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나 유럽의 분단 국가인 독일에서 미디어 아트를 창시하며 문화 간 격차 해소를 노력한 백남준은 예술가이자 세계 시민으로서도 아이러니적 정체성을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분열과 환경 위기로 인해 인류의 미래가 밝지 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는 문명의 단절과 생명의 단절이 공존하는 비무장지대 같은 곳이 될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진화하는 불굴의 생명력이 살아남을 것이다. 일런 머스크의 꿈인 달 관광 프로젝트 ‘디어문’이 현실화되고 있듯이, 인류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실제로 개척할 날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백남준의 정신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만큼이나 희망찬 미래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올해 정부의 문화예술 예산 정책은 심각하다. 영화제를 비롯한 모든 문화 예산이 삭감되어 그 의미를 되새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시적이고 일시적인 사업에만 관심이 있는 현재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선견지명을 볼 수 없다. 한류의 힘은 특별하다. 그것은 우리의 DNA를 바탕으로 강인하며 신선하다. 현재 세계의 정치·경제적 혼란속에서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한류는 소셜미디어를 질주하며 달려와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한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지금 이 순간, 한류 정책은 명철한 문화 철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DMZ와 같은 상징적인 장소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실험적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어 전 세계와 공유하면 좋겠다.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재해석하고 문화철학을 담아 새롭고 매력적인 K컬처의 장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DMZ를 미래를 상징하는 K컬처로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동양사상의 화합의 정신에 물을 주고, 젊은 세대에게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상징성, 과학기술과 함께 미래지향적 문화강국으로서의 한류의 역할, 이에대한 정부지원을 활성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백남준은 세계의 위기를 축제로 만드는 유쾌한 아티스트다. 그는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했다. 문화예술을 통해 미래를 그려내는 역할을 우리 한류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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