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해외시장을 뚫을 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보이지 않는 텃세다. 외국 기업으로서 현지인과 정서적 친밀도를 높이지 못하면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오랜 시간 유럽 등의 식민 지배를 겪은 아프리카에서는 ‘우리 것을 빼앗아 가려고만 한다’는 피해의식을 최소화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한국 입장에서 한류의 현지 확산은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반갑다. 실제 2월 중순 기준 케냐의 넷플릭스 TV 시리즈 순위(주간)를 보면 2위가 여신강림(True Beauty), 4위가 연애대전(Love to Hate You), 5위가 피지컬100, 9위가 철인왕후(Mr. Queen)로 톱10에 한국 콘텐츠가 4개나 포진했다.
아프리카 서부의 코트디부아르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서아프리카 대표 공연 축제인 ‘마사’가 현지에서 열렸는데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참가했다. 난타를 비롯한 3개의 공연팀이 참가했다. 600석 정원이 모두 차 약 200명이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됐다고 한다. 최근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이 이집트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도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90% 이상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동안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프리카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온 중국이 주춤한 것도 한국에는 기회다. 중국은 2013년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이어 경제·무역협력을 확대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펴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기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44개국이 중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저성장 등으로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의 내실화를 고심하는 등 동력이 저하된 상태다. 아프리카 현지에서도 중국이 다리·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할 때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이 아닌 중국인을 데려와 사업을 하는 행태 등에 대해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아울러 현지에서 중국인과 아프리카인 간 갈등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기업이 아프리카로 진출할 적기를 맞았다는 평가에 힘이 실린다. 물론 중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각국이 아프리카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며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저성장 위기에 처한 한국이 아프리카라는 거대 시장을 앉아서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강대국들과는 다르게 식민지 경험이 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아프리카에서는 강점으로 평가된다. 수탈 의혹이 따라붙는 강대국들과 달리 한국은 식민 지배의 아픔을 공유하는 만큼 아프리카와 손잡고 같이 성장하자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어서다.
아프리카에서는 한국 기업에 자동차 시장이 유망하다는 평가다. 시장조사 업체 ‘모더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해 아프리카 자동차 시장 규모는 205억 달러(약 28조 원)이며 매년 5% 이상 성장해 2029년에는 263억 달러(약 36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는 전기차 보급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로코는 ‘전기 모빌리티를 위한 국가 마스터 플랜’ 개발에 착수했고 코트디부아르와 케냐도 국토 전역에 전기차 충전소를 구축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1년 말 약 5만 대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전기차가 2040년까지 2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류 바람을 탄 화장품도 유망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아프리카로 수출한 기초화장품은 지난해 약 942만 달러로 전년 대비 66% 급증했다. 2020년 159만 달러에서 3년 사이 6배나 폭증한 것이다.
정부도 아프리카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외 무상 원조를 전담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난해 아프리카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액은 2억 622만 달러(잠정)로 사상 처음 2억 달러를 돌파하며 1위인 아시아(2억 1246만 달러)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KOICA 지원으로 역량 개발 교육을 받은 아프리카 국민의 숫자는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2만 5381명(중복 포함)에 이른다. KOICA는 1991년 이후 아프리카에 총 8101명의 개발 협력 인재 및 봉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김생 주코트디부아르 대사는 “한류 등 문화 교류를 통해 아프리카가 한국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며 “문화를 통해 기반이 닦이면 다음 단계인 물건을 팔기는 쉽다. 시장 확보 차원에서 이제는 시간이 됐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