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국내 부동산 신탁사들의 총영업이익이 분기 기준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등에 따른 건설사의 영업 환경 악화가 신탁사로 전이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요 부동산 신탁사 총 14곳은 올 1분기 총 58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1분기 기준 신탁사들의 총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0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하면서 총당기순이익(-144억 원)도 적자로 전환됐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그동안 신탁사들이 적극적으로 비중을 늘려온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때문으로 보인다. 책임준공형 신탁 사업은 건설사가 부도 등의 이유로 약속한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신탁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건설 경기 악화로 공기를 맞추지 못하는 사업장이 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현장 중 약 23%가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 업계 관계자는 “신탁사와 책임준공형 신탁계약을 맺은 건설사의 80% 이상이 시공 능력 순위 100위권 밖의 건설사인 만큼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 신탁사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고금리로 부동산 경기가 둔화하면서 자체 투자 사업인 ‘차입형 토지신탁’ 사업장의 분양 실적이 저조한 점, 정부의 PF 정상화 방안에 따라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확대 등도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 '황금알 낳는 거위'서 추락…'책준'에 운 부동산 신탁사
올해 1분기 국내 부동산 신탁사들의 실적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그 동안 공격적으로 추진해 온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사업이 부동산 경기 악화로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KB부동산신탁 등 금융계열 신탁사들은 그간 고수익을 노리고 책임준공형 사업 비중을 늘려왔는데 준공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사업장이 늘면서 보증 리스크가 커졌다. 여기에 비금융계열 신탁사 역시 부동산 시장 침체에 신규 수주가 줄고 있어 신탁업계 전반적으로 장기적인 수익성 훼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주요 신탁사 14곳 중 영업손실 규모가 가장 큰 곳은 KB부동산신탁으로 총 571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은 251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적자로 전환한 것이다. 교보자산신탁(-342억 원), 신한자산신탁(-298억 원)도 대규모 적자를 내는 등 금융계열 신탁사들의 실적 악화가 두드러졌다. 총 14곳의 신탁사 중 11곳이 흑자를 기록했지만 그마저도 영업이익이 줄었다. 코리아신탁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 95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79% 감소했다. 같은 기간 무궁화신탁도 109억 원에서 40억 원으로 63% 줄었다. 이밖에 대신자산신탁(-62%), 우리자산신탁(-55%), 신영부동산신탁(-32%), 코람코자산신탁(-44%), 하나자산신탁(-11%) 등도 영업이익이 줄었다.
다만 비금융계열 신탁사 중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 36억 원에서 85억 원으로 1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토지신탁도 72억 원에서 135억 원으로 늘었다. 신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금융계열 신탁사의 경우 사업 비중이 큰 차입형 토지신탁에 대한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숨통이 트인 반면 금융계열 신탁사는 수익의 대부분인 책임준공형 신탁사업 문제의 불똥이 이제 막 튀기 시작하는 단계여서 실적 희비가 엇갈린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신탁사의 사업방식은 크게 차입형 토지신탁과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두 가지로 나뉜다. 차입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주도적으로 사업비를 조달하는 반면 책임준공형 신탁은 신용도가 낮은 건설사가 신탁사의 '명함'을 빌려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신탁사는 '명함 값'으로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 신탁업계 후발주자인 금융계열 신탁사는 2015년 책임준공형 신탁제도가 시행되자 공격 영업에 나서며 몸집을 불렸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금융계열 신탁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사업장과 관련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잔액규모는 19조 9000억 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8.1배나 높다.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책임준공형 신탁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부동산 PF 시장 경색으로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부도 등의 이유로 책임준공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건설사가 늘어나면서 부담이 신탁사로 전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신평은 지난해 말 기준 책임준공형 사업장 PF 잔액 중 시공사가 기한을 지키지 못한 사업장이 23%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달에는 무궁화·신영·신한·코람코 등과 신탁계약을 맺은 부산 중견 건설사인 남흥건설과 익수종합건설이 부도 처리됐다. 이 경우 신탁사는 추가 비용을 투입해 시공사를 교체하거나 공정률을 높여야 한다. 이에 2022년 2% 이하였던 자기자본 대비 책임준공형 신탁 관련 신탁계정대여금 비중은 지난해 말 13.6%까지 상승했다.
각사마다 단계별 위험 요인이 '주의' 수준으로 분류되는 사업장이 많아지면서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액이 늘어나는 것도 실적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교보자산신탁의 대손충당금 규모는 지난해 1분기 250억 원에 불과했으나 올해 1분기에는 1557억 원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정부의 PF 구조조정에 따라 앞으로 대출 만기 연장에 실패하는 사업장과 부도 건설사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권신애 나신평 책임연구원은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PF 대출 우발채무가 현실화될 경우 부동산 신탁사의 재무건전성 및 신용도는 큰 폭으로 저하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비금융계열 신탁사도 전망이 밝지는 않다.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며 수수료가 낮아지고 있는 데다 신규 수주마저 감소하는 게 주요 리스크로 꼽힌다. 한국자산신탁의 올해 1분기 수주는 41억 원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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