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민간에서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인스타그램이 필수 앱일 만큼 통신 인프라가 갖춰졌고 고급 인재도 많습니다. 기업이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아프리카에도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이에녹(33) 데이터메이커 대표와 신민용(35) 바딧 대표는 “우수한 젊은 인력이 많고 잠재력이 큰 시장인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라며 이같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이 대표는 “아프리카의 많은 인구는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의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학습용 데이터를 가공하는 데이터메이커는 한국과 가나에서 데이터 랩을 운영하고 있다. ‘원숭이’ 그림에 원숭이라는 데이터를 입력하는 식으로 일종의 AI용 교과서를 만드는 ‘데이터 라벨링’이 주 사업이다. 중고생 때 선교사인 부모님과 5년간 가나에 거주했던 이 대표는 “개발자가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업무보다 데이터 라벨링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며 “학창 시절 만났던 가나 현지 친구들이라면 충분히 이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가나에 진출했다”고 전했다.
송아지의 미세한 움직임을 분석해 송아지 폐사의 약 90%를 차지하는 소화·호흡기 질병을 조기 감지하는 바딧은 케냐에 진출했다. 13개 농가를 지원하며 평균 폐사율을 32.6%에서 0.6%로 낮췄다. 신 대표는 “아프리카에서 제대로 된 사업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게다가 케냐는 소에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가축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가진 만큼 우리 기술이 농가의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진출 초기 사업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신 대표는 “보다 더 여유롭다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면서도 “더 잘살고 싶다는 인류 공통의 욕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환경에서 기술을 접목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며 “이력제 등 개발도상국에 아직 구축되지 않은 제도적인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큰 국가 기반 사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나 진출 6년 차인 데이터메이커는 180명 이상의 현지 인력을 채용했다. 이 대표는 “가나에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고급 인재가 많은 데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어 대규모언어모델(LLM) 서비스 개발에 용이하다”며 “챗GPT·제미나이 등 LLM 서비스 개발을 위한 제반 작업도 다수의 대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메이커는 현지 인력 교육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 대표는 “회사의 여성 청소부를 ‘라벨러’로 전직시켜 성공했다”며 “훈련비를 제공하며 현지 인력 양성에 힘을 쏟은 보람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진출 과정에서 중앙·지방정부와의 네트워크 구축이 가장 큰 애로 사항이었다고 회고했다.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이 단순히 사회기반시설(SOC) 조성에 쓰이기보다 세부 산업에 집중 지원됐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신 대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KOTRA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며 “정부가 아프리카 국가의 중앙·지방정부나 신뢰할 만한 기관 등 파트너를 발굴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 역시 “가나에 살며 인맥이 있고 문화도 알지만 현지 네트워크를 확장하기는 쉽지 않다”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계를 강화해 국내 IT 기업들이 동남아뿐 아니라 아프리카에도 아웃소싱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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