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습니다’라는 대사가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됐어요. 이후에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되면서 그 대사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더라고요.”
2009년 초연 이후 15주년을 맞이한 밀리언 셀러 뮤지컬 ‘영웅’에 일본인 배우가 처음으로 출연한다. 뤼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본 교도관 지바 도시치(1885~1934) 역할을 맡게 된 노지마 나오토에게 이번 뮤지컬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경험이었다.
그는 2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 공부부터 시작했다”며 “마음으로 우러나와 눈물을 쏟으며 대사를 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밝혔다.
지바와의 인연은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영웅(2022)’을 통해서다. 다만 그때도 지바를 연기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습니다’를 입 밖으로 내놓으면서도 ‘왜 지바가 사과를 하지’라는 마음뿐이었다. 이후 지바를 잊고 살 즈음 지난해 제작사 에이콤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는 “학교를 다닐 때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 뒤에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는 배우지 못했다”며 “뮤지컬 ‘영웅’도 막연하게 ‘일본은 나쁘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어서 두려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우리나라 뮤지컬 ‘빨래’에서 몽골 출신 이민자인 ‘솔롱고’ 역할로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정성화·양준모 배우의 격려에 힘입어 뮤지컬 출연을 결심했다.
이후 그는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이날 지바와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내 마음의 안중근’이라는 일본어 책을 가져온 그는 “지바와 안중근 의사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다가 지바의 생가에도 다녀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바의 생가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이 한때 보관됐던 장소이기도 하다.
몰입을 하게 된 그는 김민영 연출에게 용기 내 건의하기도 했다. “제 이름은 지바 도시치입니다. 늦었지만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지바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건 애초 대본에는 없었지만 안중근 의사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제안하게 됐다.
사실 많은 일본인이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거나 인정을 못할 뿐 자신과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고 노지마는 설명했다. 그는 “사형 집행 5분 전의 ‘동양평화’ 신에서 조마리아 여사가 지어준 안중근 의사의 수의를 ‘제가 입혀드려도 되겠습니까’라는 대사가 있는데 많이 울었다”며 “일본 사람들도 인정이 어려울 뿐이고 미안하다고 하고 싶어도 다른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제가 그 벽을 먼저 허문 느낌이 있다”고 덧붙였다.
2001년부터 배우 활동을 한 그는 2011년 뮤지컬 ‘빨래’를 시작으로 한국 뮤지컬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하던 중 2막에서 사고로 배경 음악이 꺼졌는데도 무반주로 계속 노래를 이어간 그를 제작사에서 눈여겨본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 뮤지컬 연기 방식이 새로웠다”며 “일본 극단에서도 ‘한국처럼 자연스럽게 해’라는 게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소수의 유명 배우가 수십 년째 주요 배역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더블 캐스팅’ 문화가 거의 없는 일본인 만큼 한국 뮤지컬 업계의 역동성과 신선함이 새롭게 도전하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10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여전히 수십 번 대사를 연습한다”며 “실력을 더욱 키워 이토 히로부미 역할도 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