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짧은 만남이 사랑으로 무르익기도 전에 마음이 떠난 은수를 향한 상우의 허탈한 한마디. 2001년 영화가 개봉된 지 20여 년이 지나도록 영화 속 명대사 하면 빠지지 않는 ‘봄날은 간다’의 이 짧은 대사에는 관계의 가변성이 함축돼 있다. 애틋하고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랑도 변한다. 하물며 이해(利害)로 얽힌 국가들의 관계는 말해 무엇하나. 불구덩이에라도 함께 뛰어들 것 같던 우방이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는가 하면 죽일 듯 싸우던 적대국이 둘도 없는 동지가 되는 일이 국제사회에는 비일비재하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가장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동맹은 이웃 나라 폴란드였다. 한 달 사이 몰려든 20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두 팔 벌려 환대하고 머뭇거리는 독일을 설득해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2 지원을 주도한 것도 폴란드였다. 하지만 ‘공공의 적’에 맞서 굳게 잡은 두 손도 자국의 권익 앞에는 힘을 잃었다.
갈등은 우크라이나에서 밀려들어오는 값싼 농산물에 시장을 잠식당한 폴란드가 지난해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시작됐다. 전쟁 발발 3주 만에 포화 속 키이우를 찾아 우크라이나 지지를 약속했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당시 폴란드 총리는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무기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난민들을 감싸주던 폴란드인들은 농산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봉쇄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말 폴란드의 정권 교체를 계기로 지금은 갈등이 봉합됐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돈다.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신임 총리는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되 폴란드 경제와 농민의 권익은 양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국가이익만이 영원하고 영속적이며 그 국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19세기 영국 정치인인 헨리 존 템플, 일명 파머스턴 경의 이 말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현실 국제정치의 금언이다. 대영제국의 대외 정책을 주도했던 그는 우정이 국가 간 관계에 영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낭만’이자 ‘헛된 꿈’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뻔하다 못해 진부하게 들리는 이 말을 우리는 종종 잊고 지낸다. 서로의 이해가 맞지 않아도 우방이라면 다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네이버가 일본 시장에서 13년간 공들여 키운 메신저 ‘라인’의 경영권이 일본에 송두리째 넘어갈 뻔한 일이 있었다. 해외 자본이 자국민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이 불편해진 일본 정부가 초법적 ‘행정지도’를 앞세워 네이버의 경영권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상황인데도 우리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우호적 한일 관계를 너무 믿은 것인지, 모처럼 회복된 일본과의 관계가 깨질 것을 염려했는지 모르겠지만 ‘자국 우선주의’가 거센 국제사회의 현실과 동떨어진 안이한 대처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친해진 줄 알았던 일본의 두 모습은 자국의 경제 이익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제적 흐름의 한 단면이다. 11월 미국 대선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는 변수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요즘 틈만 나면 ‘부자 나라 한국’이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고 압박한다. ‘트럼프 2.0’이 현실이 된다면 굳건한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 협력이라는 한국 외교안보의 틀에도 균열이 불가피해진다.
신냉전이 한창인 불안정한 국제 정세에서 동맹과 우방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군주론’을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어중간한 중립’이 파멸을 부른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익과 목적으로 얽힌 동맹을 친구로 착각하는 것 역시 파멸의 원인이라고 봤다. 관계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만하면 휘둘리고 무시당한다. 한국의 국익을 생각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정글에서 존중받는 동맹과 우방으로서 가치를 높이고 흔들림 없이 국익을 지켜내기 위한 ‘닻’은 결국 실력이다. 우리 스스로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익도, 동맹·우호 관계의 지속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 격상과 한일 관계 회복이라는 성과를 냈던 윤석열 정부 외교의 ‘봄날’이 끝났을 때 시린 계절을 헤쳐나갈 준비가 우리에게 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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