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 안산에 있는 반도체 장비회사 포이스는 사무실로 오르는 계단 마다 휴대폰을 보다가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한 경고문이 붙어 있다. 계단 높이는 다른 계단에 비해 낮게 느껴졌고 모서리도 둥굴게 깎여 있다. 쉬운 경고일 수 있지만, 무서운 경고기도 하다. 사다리 사망사고는 1m도 안되는 높이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면서 일어난다. 세계적 화학업체인 듀폰도 직원들에게 연필 심을 위로 꽂이에 두지 못하게 하는 안전습관부터 강조한다. 이 회사 회의실에는 안전경영이 최우선이라는 내용의 직원들의 다짐이 액자로 걸려있다.
눈길을 끄는 시설은 복도에 설치된 30여개 화면이 모인 대형 폐쇄회로(CC) TV다. 직원들의 주 작업 공간 이외 공장 내 통로, 공장 내 주차장, 공장 뒤 후미진 공간까지 볼 수 있다. CCTV는 안전사고 대응에 효과적이지만, 직원의 사생활 침해 논란도 일어날 수 있다. 포이스 관계자는 “CCTV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어 전 직원의 동의를 얻어 설치했다”며 “보안 목적도 있지만, 무심코 2인 1조 작업을 하지 않았을 때 경고하기 위해 설치했다, 일 처리를 빨리하기 위해 혼자 작업하는 건 그만큼 사고 위험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2인 1조 작업은 노동계가 법적으로 의무화를 요구할만큼 안전작업의 핵심이다.
포이스는 SK하이닉스의 1000여개의 협력업체 중 ‘안전한 사업장’이 자신감이 가장 넘치는 기업이다. 22일 고용노동부, SK하이닉스와 연 안전보건 상생협력 간담회에 선뜻 응했다. 상생협력사업은 SK하이닉스와 같은 원청 또는 모기업이 사내외 협력업체, 지역 중소기업이 컨소시엄을 꾸려 함께 안전 사업장을 만드는 것이다. 대기업과 정부의 안전노하우와 재정 지원이 중소기업에 공유된다.
하지만 정부 사업에 참여하더라도 포이스처럼 사업장 안전을 확인하는 고용부와 안전관리가 미흡할 경우 협력 관계가 흐트러질 수 있는 주고객사(SK하이닉스), 언론매체 앞에서 안전을 뽐내기는 쉽지 않다. SK하이닉스 관계도 “여러 협력사를 설득했지만 사업장 공개를 꺼렸다”며 “포이스가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포이스가 안전하면, SK하이닉스의 ‘자신감’도 붙는다. SK하이닉스는 이날 간담회에서 포이스와 같은 협력사와 공급망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광문 SK하이닉스 부사장은 “반도체산업은 핵심공정을 기계가 담당하는 무인화로 가고 있다”며 “기술력뿐만 아니라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등 안전사고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면서 허술한 안전 체계는 근로자는 물론 막대한 경영 피해로 이어진다. 최 부사장은 “협력사 사고로 공정이 중단되면 수백억 원의 손실까지 일어날 수 있는 게 반도체 산업”이라고 말했다. 포이스는 SK하이닉스와 협력 단계가 높아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입주할 예정이다.
포이스 안전 경영은 봉경환 대표가 만들었다. 이 기업은 직원은 90명에 불과하지만 올해 연 매출 520억 원을 예상하는 강소기업이다. 봉 대표는 이 성과에 대해 “직원들처럼 20년을 중소기업 근로자로 일했다, 돌이켜보면 참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다”며 “직원들이 건강하게 출근하고 건강하게 퇴근하는 게 목표다. 안전만 생각하면서 일했는데 의외로 (포이스도) 경영 성과가 났다”고 겸손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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