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한계기업, 취약 계층 등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행은 23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5%로 0.4%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성장세 개선,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물가의 상방 리스크가 커졌다”며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열한 차례 연속 동결하며 3.5%로 유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그 시점이 불확실하다”며 고금리 장기화를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빨라야 올 10월 금리 인하에 나서고 인하 횟수도 연내 한두 차례에 그칠 것으로 본다.
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위험 수위에 이른 부채 리스크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정부·가계·기업 등 우리나라의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3분기 말 5988조여 원에 이르렀다. 올해 정부의 국채 이자 상환액만 27조 원이다. 우리 상장사 7곳 중 1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이다. 특히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서민들의 가계 부채 위기가 심상치 않다. 8개 전업 카드사의 1개월 이상 신용카드 연체액은 지난해 말 2조 원을 넘어서면서 2003~2004년 ‘카드 사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장기 성장의 기반을 다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고통스럽더라도 경제 각 주체들이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의 위험 요인이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 대응하고 기업 옥석 가리기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금 퍼주기’ 정책을 펴면 물가 불안을 자극해 금리 인하 시기가 늦어지고 취약 계층의 어려움만 가중된다.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 국민이 아닌 일시적 자금난에 처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핀셋 지원’을 하고 서민 정책금융을 활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민들의 ‘급전’ 창구인데도 연 20% 법정 최고금리에 묶여 고사 직전인 대부업이나 제2금융권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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