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영국 노동당 창당을 주도한 제임스 키어 하디(1856∼1915)는 평생을 열정적인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그가 1913년 문건에서 “사회주의자는 지상낙원을 건설하려는 염원으로 가득 찬 열정적인 종교인과 다를 바 없다”고 밝힌 것만 봐도 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폭력적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운동을 서로 싸우는 집단들의 지배권 투쟁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사회주의 운동을 타락시키는 것”이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스코틀랜드의 사회주의자이자 노동운동 지도자였던 하디는 1892년 총선에서 당선돼 영국 최초의 사회주의자 하원의원이 됐다. 의회주의자인 그는 5선 의원까지 지냈다.
키어 하디의 이름이 7월 4일 총선을 앞둔 영국 정가에서 다시 소환됐다. 이번 총선에서 그와 이름이 같은 키어 스타머 대표가 이끄는 노동당이 리시 수낵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을 누르고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스타머의 ‘작명’ 사연이 회자되고 있다. 1962년 런던에서 태어난 스타머 대표의 이름은 노동당의 강성 지지자였던 그의 부모가 키어 하디에서 따와 지었다고 한다.
하디가 만든 노동당은 지난 124년간 부침을 반복해왔다. 1945년 총선에서 첫 단독 과반 승리로 집권한 노동당 내각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불리는 대대적인 복지 정책을 폈으나 과도한 사회복지와 노조의 전횡으로 생산성이 저하하는 ‘영국병’을 초래해 실각했다. ‘제3의 길’을 추구한 토니 블레어 내각 이후의 노동당 집권기도 경제 실책으로 13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근 노동당 지지율이 40%를 웃돌면서 보수당보다 20%포인트가량 앞서는 이유도 경제에 있다. 영국은 최근 수년간 유럽연합(EU) 탈퇴와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저성장과 물가 급등을 겪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권으로 떨어져 주춤거리는 것도 고물가와 경기 침체 등 경제와 민생 탓이 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권 위기의 원인을 따져보면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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