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선거를 앞두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이들 사이에서도 파열음이 나오며 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가자지구 전쟁 해법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다양성 속 합의주의’를 추구하는 EU의 설립 이념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휩쓰는 극우 열풍…통합 이념 흔들려=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럽 27개국을 대표할 유럽의회 의원 720명을 뽑기 위해 다음 달 6~9일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우파 정당이 약진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통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했던 유럽 사회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이민자를 배척하고 반(反)EU를 내건 극우파 정당의 합계 지지율은 20%를 조금 넘는다. 온건 보수파 정당들의 합계 지지율이 25%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극우 정당들 가운데서도 강경한 반이민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정체성과 민주주의(ID)’가 중도 성향의 ‘리뉴유럽(RE)’을 제치고 제3당으로 약진할 가능성이 크다. 가디언은 이번 선거에서 ID가 59석에서 85석으로 늘어 3당으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서도 파열음이 나오는 등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ID가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을 제명한 사건이다. AfD 소속 의원이 중국·러시아 스파이라는 의혹에 휩싸인 데 이어 언론 인터뷰에서 나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까지 내놓으면서 논란이 커지자 제명에 나선 것이다.
제1당은 중도 우파로 분류되는 유럽국민당(EPP)이, 제2당은 중도 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이 유지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1·2당의 의석 수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중도 정당들이 여전히 과반을 유지해 유럽의회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극우 정당들이 기존 EU의 녹색·무역·이민정책을 바꾸고 EU와 중국·러시아 간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유럽 분열 배경에는 이민·고물가·우크라이나 문제=극우 정당이 약진하는 배경에는 극심한 사회 분열이 자리하고 있다. 이민·난민에 대한 혐오, 고물가에 따른 생활고로 유럽 시민들의 분노가 오랫동안 축적되면서 ‘엘리트 정치 타파’를 외치는 극우 정당의 약진에 돛을 달아준 셈이다. 여기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치적 분열을 부채질하는 모습이다. EU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지만 이를 계기로 유럽 전역의 민족주의자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반동적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면서 분열이 더욱 심화했다. 이달 15일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피습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조란 진치치 세르비아 총리 암살 이후 20여 년간 평화로웠던 유럽에 국가 지도자를 겨냥한 분노가 다시 표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놓고 EU 또다시 균열=당분간 유럽의 분열은 심화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특히 가자지구 전쟁의 여파로 팔레스타인의 국가 인정 여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22일(현지 시간) 노르웨이·아일랜드·스페인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기존에도 EU에서는 폴란드와 불가리아·체코·헝가리·스웨덴·슬로바키아·몰타 등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세 나라가 동시에 추가된 것이다. 반면 독일·프랑스 등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합의주의인 EU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종식을 위한 해법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두 국가 해법’에 찬성하면서도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일부 회원국들의 반대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회원국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원 보이스’ EU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EU는 서둘러 봉합에 나서는 분위기다. 주제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2일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해법을 찾자고 촉구했다. 그는 “공동 외교와 안보 정책의 틀 안에서 모든 회원국과 계속 협력해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공동 입장을 촉진하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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